아르망(Arman)-장기주차: Long Term Parking

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2020-01-03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뒤샹의 레디메이드의 다다적인 제스처가 현대 미술가들에게 무한한 권위를 부여한 결과로 이어진 이래 미술에 있어서의 오브제의 사용은 회화와 조각의 이분법적 경계를 해체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술 표현의 민주화를 촉발시켰다. 이와 더불어 오브제의 발전된 양상인 정크아트의 앗상블라주 기법은 새로운 공간 세계의 장을 열어주어, 현대 미술가들의 조형작업은 과거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상을 띠고 전개된다. 앗상블라주 기법은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잡다한 물건들을 모아 평면적인 타블로이드회화에 삼차원성을 부여하는 기법으로서, 이 기법에 의한 작품은 하나의 단일체가 집합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여 평소와는 다른 새로운 물체, 혹은 이미지로 변한다. 그리하여 오브제가 단독으로 존재할 때보다 더 강한 의미를 지니며 그것의 조립, 병치, 집적(輯積)하는 과정에서 물체의 개체성이나 동일성은 상실되고 물질성이 강조됨으로써 추상적 효과를 얻게 된다.

프랑스 태생의 조각가 아르망은 산업사회의 일상적인 대량 생산품을 사용하여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현대의 소비문명을 비평한다. 작품 은 높이 65피트의 콘크리트 속에 60대의 자동차를 쌓아올린 건축물 규모의 작업이다. 이 작품은 `자동차'라는 같은 단어의 동어반복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현존하는 양식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본래의 성질을 잃은 `자동차'라는 같은 음의 길이와 박자를 지닌 60개의 산업적인 레디메이드 음표가 오선지위의 서로 다른 음높이에 위치함으로써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얼핏 어지럽게 보이는 구조물에도 일정하게 반복되는 기본적인 이미지가 있고, 그 반복이 전체 리듬을 형성하여 무질서하게 보이는 현실세계에도 일정한 질서가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 작가의 전위적인 구성이 `자동차'라는 원본이 가진 의미를 지우고 분리함과 동시에 다른 요소와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아르망은 기존의 사물이 가진 가치를 파괴하고 변용함으로써 그것이 지닌 동일성을 해체한다.

반복이나 반복된 구조는 예술의 다양한 분야에서 수없이 활용되는 미학적 질서의 기본원리이자 자연 질서의 보편적인 형태이다. 아르망의 반복에 의한 집합의 미술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미묘한 부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기술문명, 대량생산과 깊은 연관을 맺고 전개되어왔다. 작품 속에서 자동차는 현대 생활에 가장 대표적인 산업의 아이콘으로서 사회학적 의미로는 생산-소비-파괴의 과정을 환기시키며 산업문명비판적인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 아르망은 이처럼 대량생산된 일상의 비속한 소재들을 해체 재구성하여 미학적 견해를 확대하고 새로운 조형미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그의 전위적인 반복에 의한 구성법은 예술에서의 유희개념과 더불어 탈중심적인 미를 표방하여 다중적 의미형성을 가능케 한다. 그의 이러한 작업 개념은 물성적 재료의 확장으로 이어졌고, 예술에서의 인식론적 틀의 혁신을 이루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미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