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내 님에게 내어줄 메꽃

청마담 시골살이

2020-08-22     엄남희 뜨렌비팜 대표

뜨겁다. 이 시기의 햇볕은 정말 뜨겁다. 감성지수 높아지는 날엔, 호미자루 내던지고 어디로든 달려가는 청마담이지만, 8월엔 한눈팔 수 없다. 다른 이들 모두 떠나는 여름휴가도 청마담에겐 없다. 점심도 거른 채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아로니아 수확에 전념하는 날이 7월 중순부터 늦가을까지 계속된다. 오늘도 여지없이 땀 흘렸다. 택배 기사가 방문하여, 송장 붙여놓은 박스 모두 다 걷어간 저녁 무렵에나 한숨 돌린다. 찬물 한 바가지 뒤집어쓰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쪽마루에 걸터앉았는데, 잔디 위에 살포시 연분홍빛 메꽃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날, 근처 풀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메꽃은 언제 보아도 정겹다. 어렸을 때 `미뿌리'라 하여 땅속 뿌리줄기를 캐먹었는데, 메꽃의 뿌리라는 의미에서 그리 불렀을 테다. 뿌리줄기에는 전분과 비타민이 풍부해 구황식물로도 유용했다. 보리나 밀의 수확이 끝난 시기에, 밭을 갈아엎으면 뿌리줄기가 하얗게 뒤집어지는데 그것을 한 소쿠리씩 주워담아 밥 위에 얹어 쪄먹기도 하고 잘게 썰어 밀가루 옷 입혀 바삭하게 튀겨먹기도 했다. 우린 익히지 않고 주로 날로 먹었지만 생식(生食)의 경우, 너무 많이 먹으면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하니 많이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시절 메꽃의 뿌리는 아이들에게 심심찮은 간식이었지만, 어른들은 아주 싫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메꽃은 땅속 뿌리줄기 사이에 싹눈이 있어 아무리 잘라도 죽지 않고 새로운 싹이 돋아난다. 여느 풀들과 달리 그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산소에 한번 자리하는 날엔 완전 골칫거리다.

`뻗어가는 메를 캐어'정말 엄청나게 뻗어간다. 메꽃은 생김새가 깔때기 모양이기 때문에 나팔꽃이라 부르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식물분류학상, 둘 다 메꽃과(科)임에는 틀림없지만 속(屬, genus)이 다르다. 나팔꽃 속(屬)의 나팔꽃은 주로 보라색으로 은근히 자극적인 데 비해, 메꽃 속(屬)의 메꽃은 엷은 분홍색이라 수수한 편이다. 풀밭에서 기어다니므로 더 그렇게 보인다. 메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낮 동안 내내 피어 있어 누구나 꽃을 볼 수 있다.

엄남희
 

풀밭에 살그머니 피어 있는 메꽃은 `고자화'라는 우울한 별명이 있다. 그것은 생식기인 꽃이 그 기능을 제대로 못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꽃 속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는 완전화(갖춘꽃)이기는 하지만 다른 개체의 꽃가루를 받아야만 수정이 이루어진다. 이는, 식물의 `이형예현상'으로 이런 식물이 여럿 있다. 개나리도 그렇고 메일, 부레옥잠에서도 볼 수 있다. 어쩌면 메꽃은 땅 밑 뿌리줄기의 왕성한 세력으로 종족 번식에 승부를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보이는 `허우대'의 기능은 허술할지라도, 숨겨진 `아래'의 힘은 그 어느 식물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가히 훌륭한데 고자화 라니 참 아이러니한 표현이다.

뿌리뿐 아니라 꽃은 차로도 즐긴다. 혈압과 혈당을 떨어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 하니, 올여름엔 은은한 메꽃차를 만들어 고운 내 님에게 정갈하게 내어봄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