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피카소

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2020-12-03     이상애 미술학 박사
 

우리에게 흔히 닉서화가라 알려진 장 미쉘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아이티계 회계사인 아버지와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푸에르토리코계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난 흑인화가이다.

그는 미국 사회의 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에서 다른 흑인 친구들과 어린시절을 보냈다. 생활형편이 어려워진 바스키아 가족은 어머니의 고향인 푸에르토리코로 이사를 가게 되지만 바스키아는 예술적 감성과 뉴욕에 대한 향수로 17때 가출하여 뉴욕 브루클린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작업실도 잘 곳도 없었기 때문에 거리의 아이로 생활하며 뉴욕거리와 지하철에서 낙서를 통해 감정을 표출했다. 이것이 그의 예술가로서의 삶의 시작이다. 그러던 중 당시 미술 평론계의 거장인 ‘르네 리카르드(Rene Ricard)’는 바스키아를 미술계로 이끌었고 흑인, 히스패닉계 최초의 화가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다.

바스키아가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은 는 SAMO 프로젝트로부터이다. ‘SAMO’는 그의 동료 알 디아즈(Al Diaze)와 함께 마리화나를 피우다가 창안한 이름으로써 환각 상태에서 바스키아가 “SAMe Old shit(흔해빠진 개똥같은)”이라고 말한 것으로 앞 글자를 조합해 짧게 변조한 것이다.

SAMO프로젝트의 수행은 바스키아가 화가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시기이다. 이 시기의 형태에서 보이는 낙서이미지는 자신의 예술적 견해와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낙서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되어있다.

바스키아의 작품에서 언어 또한 이미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림의 복잡한 형태와 의미는 아프리카의 암각화, 부랑자들이 서로의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던 기호인 호보 부호(Hobo Signs)와 미국의 상업, 대중문화에서 따온 요소들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바스키아는 피카소, 장 뒤뷔페, 사이 툼블리, 잭슨 폴록 등 20세기 미술가들이 이룩한 회화양식과 기법들을 흡수하여 자신의 예술세계를 키워나갔다.

또한 과거의 거장들의 작품을 참고하여 새로운 표현기법으로 구사했는데 그의 미술의 표현 기법을 보면 인종차별주의, 노예의 역사, 흑인들의 정치에 관한 것들이 많다.

이는 1980년대 미국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여전히 행해지고 있었고 자신도 흑인으로서 정체성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때문에 바스키아에게는 ‘붓을 든 인권운동가’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기도 한다.

또한 바스키아는 어린시절 교통사고로 비장을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았는데 당시 입원중 어머니로부터 선물로 받은 해부학책을 읽은 후 해부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화가로서의 위치나 인체 해부를 자신의 독창적 조형기법 방식으로 작품에 도입하였다.

이상애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해부학적 요소들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써 스스로 자가치유에 대한 심적 갈망이었으며 생존본능으로서의 상징이미지였다.

낙서화가 SAMO로 출발해서 27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한 천재 흑인화가 바스키아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절망과 고독 속에서도 인간 자유에 대한 본질과 정체성에대한 해답을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찾으려했다는 것이다.

/미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