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2020-02-12 연지민 기자
이 춘 오
말라버린 나무는 모두 죽은 줄 알았다
겨우내 숨죽인 몸짓
삶을 상실한 줄 알았다
가지를 꺾는다, 가지는 허연 속살을 보인다
흰 피를 흘린다
죽은 줄 알았던 것들은
찬 바람 속에서도 살아 있었다
봄비에 속살을 내보인 가지 끝
처녀 젖멍울처럼 튀어오른 새순을 본다
아, 아직 삶이 남아 있구나
그렇게 뻗대며 살아 있구나
#봄비가 내렸습니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눅눅한 하루였지만 겨우내 메말랐던 대지는 촉촉이 젖었습니다. 이 봄비가 땅속으로 스며들어 잠들어 있던 생명을 깨우는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것들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싹을 틔우고, 연둣빛 속 살을 보여주려고 나뭇가지 소매를 둥둥 걷어올릴 것입니다. 가지치기로 멀뚱해진 플라타너스도 봄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