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강
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2020-03-25 연지민 기자
이 봉 환
그늘이나 응달이 고향에서는 응강인데 꼭 응강이 춥고 배고프고 서러운 곳만은 아니었다 시래기는 뒤란 처마 밑 응강에서 꼬들꼬들 말라갔으며 장두감을 설강 위 응강에 오래 두어야 다디단 홍시가 되어갔는데, 무엇보다도 어릴 적 마루청 밑 짚가리 응강 속에서 달걀을 훔친 내가 흠씬 종아릴 맞고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잠들어버린, 고향에서는 정지라고 부르는 부엌 구석 어둑한 응강의 찬 기운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하였으니 거기가 서늘하고 깊고 시퍼런 물줄기를 가진 강 중의 강이기는 하였던 모양
#그늘이 가진 이미지 때문인가요, 왠지 응강(그늘)은 멀리 돌아서 가더라도 피해가고 싶은 곳입니다. 양지라는 뒷면에서 어둡고 가난하고 서러운 곳이 우리에게 그늘로 인식되었던 탓입니다. 하지만, 서서히 말려야 하는 시래기나 홍시처럼 응강은 사유의 힘을 가진 `서늘하고 깊고 시퍼런 물줄기를 가진 강'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