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인연이 짓는(萬物因緣所生) 거라구?
김귀룡 명예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세상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 세상의 질서는 어떤 방식으로 짜인 것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문제들이다.
오늘날에는 과학자들이 이 문제 탐구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과학은 수학과 관찰(실험)로 이루어진 탐구를 일컫는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질서가 수학적 언어로 쓰여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수학을 통해 발견한 원리나 법칙을 외부 세계에 갖다 대서 맞는지 확인(실험)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과학자들은 수학과 경험을 결합시킨다.
수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건 단순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복잡하고 변화무쌍하다. 이런 다양성과 변화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 단순한 질서를 찾아가는 것이 수학이다. 곧 수학은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常) 걸(원리, 공식, 법칙) 찾아 나선다.
과학자는 수학자와 달리 경험주의자들이다. 곧 이들은 경험하기 전에는 절대 믿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들은 수학에서 산출한 단순한 원리나 법칙이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현실에 적용될지 의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세상에 수학자들이 찾는 항상적인 것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한 걸음 더 나가면 이들은 인간 머리로 만들어낸 것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항상적인 것이 있을 수 없고, 모든 것이 모든 것과 다르며 항상 변한다(異,斷)고 생각한다.
과학적 탐구는 결국 항상 같은 걸 찾는 생각(常見)과 모든 것이 서로 다르다고 하는 생각(斷見)을 결합한다. 사실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은 합리·논리적 사고를 대변하기에 과학자들은 합리적 사고를 대표한다.
모든 게 인연에 따라서 생긴다는 건 모두가 무언가에 의존해서 생겨난다(dependent arising)는 걸 의미한다. 모두가 무언가에 의존해서 일어난다는 건 만약 C가 생겼다면 그게 홀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고 다른 무엇 곧 B에 의존해서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 B는? 그것도 독자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그건 또 다른 A에 의존해서 생겨난다. A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세상에 독자적인 건 없다. 모든 게 인연에 따라 생긴다는 말이 가장 먼저 말하고 있는 건 세상에 독자적이고 항상적인 것이 없다(無我(常))는 말이다. 그리고 B에 의존해서 C가 일어난다는 건 B와 C가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非異)는 걸 의미한다. 인연은 과학자들이 찾고자 하는 불변의 법칙도 아니고 모든 것이 모든 것과 단절되어 있다는 생각도 떠나 있다. 결국 인연에 따라 일어난다는 건 과학적 합리·논리를 떠나 있다는 말이다.
세상의 생긴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건 논리와 합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고 이는 과학으로는 세상의 참모습을 완벽히 밝혀낼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모든 게 다른 것에 의존해서 생긴다는 건 독자적, 자존적인 것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기독교에서도 인간을 비롯한 세계가 결코 독자적이고 자존적일 수 없다고 말한다. 모두가 신이 창조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피조물이라는 건 자신의 존재성을 스스로 구비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곧 무언가에 의존해서만 존재성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건 자존적일 수 없다. 기독교에서도 인간의 참모습은 과학적 합리성을 벗어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게 인연에 따라 생긴다고 말하는 건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모든 게 인연 따라 생긴다면 세상에 독자(자존)적으로 존재하는 게 있을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한 자존적 존재인 신도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최종적인 제1의 원리를 상정하는 모든 철학도 의미가 없어진다. 만물인연소생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함의를 지닌 말이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