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오늘이고 내일의 오늘인 오늘
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옛날 옛적, 넓고 넓은 강림들 한복판에 한 여자아이가 살았어.'라고 시작하는 우리 신화가 있다. 시간의 흐름을 관장하는 여신 이야기다. 여자아이는 두루미와 함께 날짐승과 들짐승의 보살핌을 받으며 넓은 들에서 걱정 없이 살아간다. 자신의 근본과 정체성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던 여자아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질문을 받는다.
부모가 누군지, 나이는 몇 살인지, 이름은 뭔지. 그러나 여자아이는 아는 게 없다. 사람들은 오늘 만났으니 생일도 오늘로 삼고 이름도 `오늘이'라 짓자고 한다. 동쪽 사는 백주 할머니는 이름을 갖게 된 오늘이에게 “오늘이야, 네 어머니 아버지는 원천강袁天綱 부모궁에 살고 있단다.”라고 알려준다. 그동안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오늘이는 존재의 근원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여정의 시작은 혼자지만 과정엔 혼자가 아니다. 정자에 앉아 하염없이 책을 읽어야 하는 장상이와 매일이, 가운데 줄기에만 꽃이 피는 연꽃, 야광주를 셋이나 갖고 있는데도 승천하지 못하는 이무기, 구멍이 뚫려 새는 바가지로 온종일 물을 푸고 있는 선녀들의 도움을 받아 부모님이 계신 원천강에 도달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give & take'란 말이 있듯, 그들이 가진 한 가지씩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받아오란 부탁을 한다.
오늘이의 목적지 원천강, 부모님이 계신 원천강은 사계절이 있는 세월을 품은 곳으로 시간이 시작되는 곳이며, 세상 만물을 꿰뚫어 보는 곳이다. 여정 중에 만난 이들의 소원을 풀 수 있다고 믿는 이유다. 세월은 매일매일이 쌓여야 이루어지고, 매일은 오늘이라는 바탕이 있어야 쌓인다. 우리 신화는 시간의 중심을 오늘에 둔다. 오늘 없는 어제가 없고 오늘이 없는 내일은 없다고 여기는 것이리라.
우리의 삶을 보자. 우리가 산다고 하는 것은, 오늘 하루를 살아 내고 또 다른 오늘의 길로 접어들어야 그리 말할 수 있다. 오늘 하루하루가 모여야 우리의 인생을 엮을 수 있는 것이다.
길에서 만난 이들들도 보자. 오늘을 열심히 사는 이들이다. 운명이 정해진 대로 책을 읽고, 한 송이라도 연꽃을 피우고, 용이 되어 승천할 날을 기다리며 그들이 처한 곳에서 해야 할 일을 하며 오늘을 산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 나아감을 희망하지만 길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다. 변화를 희망하지만 오늘 안에서 헤매고 있다. `우리의 가장 큰 힘은 자신이 정의하는, 자신과 일치하는 행동이 만날 때 이루어진다.'는 심리학자 마리사 피어의 말과 접점을 이루는 부분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부여된 길을 운명을 이야기한다. 길에서 만난 이들도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운명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왜?'라는 의문에서 `어떻게'라는 길을 찾으려 한다. 그 답을 원천강에서 얻는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발 내디디며 인연을 맺어 다른 운명을 찾은 장삼이와 매일이, 하나뿐인 꽃을 꺾어 나누며 다른 줄기의 꽃도 피우는 연꽃, 하나만 남기고 두 개의 구슬을 나누는 행동으로 힘을 얻어 승천하는 이무기! 스스로 움직여 다른 운명의 길을 찾은 것이다.
그림책 <서정오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 신화 오늘이/글 서정오/봄봄> 속 오늘이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신화는 멈춰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살아있는 이야기다'라고 말한 신화학자 신동흔의 말을 실감한다. 수천 년 전 오늘이 모여 수천 년 후인 오늘이 된 것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