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변방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2024-01-29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어떤 나라나 세력 간의 경계는 자연적으로 요새를 형성하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 깊고 넓고 긴 강이거나 높고 험한 산들이 그것이다. 이런 자연 요새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세력들은 적대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변방에 서면 사람들은 경계심이 들게 마련이고, 그 풍광들은 삭막해 보이기 쉽다. 더구나 겨울의 변방은 춥고 쓸쓸하기까지 할 테니 그 삭막함은 극에 달할 것이다.

당(唐)의 시인 왕지환(王之渙)도 겨울 어느 날 변방에서 삭막함을 느끼고 있었다.
 

겨울의 변방涼州詞)

黃河遠上白雲間(황하원상백운간) 누런 강물은 흰 구름 사이로 멀리 흘러 오르고
 一片孤城萬?山(일편고성만인산) 한 조각 외로운 성은 만 길 높이의 산이로구나
羌笛何須怨楊柳(강적하수원양류) 변방의 피리는 왜 꼭 버들가지를 원망해야 하나?
春光不度玉門關(춘광부도옥문관) 봄빛은 옥문관 이곳은 넘어오지 않는구나!

시에 등장하는 변방은 한(漢) 나라 때 세워진 관문으로 이곳을 거쳐야 서역으로 갈 수 있었다.

잘 알려진 타클라마칸 사막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다. 시인은 겨울 어느 날 이 변방에 서게 되었다.

우선 이곳은 강물의 빛깔도 누렇다. 아마도 사막 사이를 흘러서 그럴 것이다. 이 누런 강물은 하늘을 나는 흰 구름 사이로 흐른다. 그만큼 높은 곳을 흐르는 것이다. 강물의 누런 빛과 구름의 흰 빛이 대비를 이루며 사막 풍광의 단조로움을 완화시킨다.

사막은 드넓은 바다와 같다. 그래서 그 위에 세워진 성은 바다에 떠 있는 한 조각 배에 비유된다. 그리고 사방으로 아득히 평평한 곳에 세워졌기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높게 보인다. 그래서 만 길이나 되는 산이라고 시인은 말한 것이리라. 빛깔이라고는 누런 강물 빛과 흰 구름 빛 밖에 없고, 솟은 것이라고는 성 하나밖에 없는 변방의 풍광을 시인은 실감 나게 그려내었다.

시인이 그곳에서 들은 노래는 단 한 곡인데 그 내용이 하필 버들가지를 원망하는 것이다.

버들가지를 꺾어 주며 이별의 슬픔을 달래는 내용이니, 이 노래를 들으면 자신의 이별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절망적인 것은 이곳에는 봄빛이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다. 이별의 슬픔만이 들리고 봄빛이 다다르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겨울 변방은 삭막함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쓸쓸한 마음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삭막한 사막에 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삭막한 외면에 놓이게 되면 도리어 쓸쓸한 내면은 치유되기 쉽기 때문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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