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떡 드신 측간 귀신님!
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난 신화, 전설, 민담 등과 같은 설화가 좋다. 우리네 삶과 밀접한 이야기라 좋고, 재미가 있어 좋고, 상황에 맞는 재치가 있어 좋다. 또한, 숨겨 놓은 교훈 찾는 재미가 쏠쏠해서 좋고, 지역의 특성이 담긴 서사의 차이를 찾는 재미가 있어 좋다. 그 재미 중 으뜸은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당대의 가치관 알아가는 재미일 것이다.
가택신에 대한 옛이야기도 많다. 집안 전체를 보듬는 성주신, 부엌을 관장하는 조앙신, 장독대를 지켜주는 철륭신 등 보호 역할을 하는 신이 있는 반면 악신도 있다.
화장실에 사는 측간신이 그렇다. 성질이 사납고 화를 잘 내며 땅에 끌릴 정도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신이란다. 하여, 내 어렸을 적 변소에 들어갈 때 갑자기 들어가면 측간의 주인인 측간 귀신이 놀랠 수 있으니 `흠흠'하며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낸 후 잠시 뜸을 들이고 들어가라 엄마는 당부했었다.
지금 되새겨 보면 측신에 대한 옛이야기를 곁들이며 화장실 예의를 일러주신 것이다.
지금 화장실이야 밝고 위생 상태도 좋아 이용이 편리하지만 대가족이 한집에 살던 시절에는 화장실 가기가 녹록지 않았다.
건물도 허술하고 밝지 않았으니 사고도 많이 있었을 것이고 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인기척을 내어 누가 있는지 확인했어야 했고 똥통에 빠질 수 있으니 특히나 조심해야 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교육은 재미가 있어야 효과적이란 걸 옛 어른들은 일찌감치 알았나보다.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해주며 주의하기를 일러주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조심하라 일러도 애들에게 옛 변소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빠질 수도 있다는 위험 말이다. 그 위험을 이야기한 그림책이 있다.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임재해 교수님이 감수를 마친 <똥떡/이춘희 글/사파리>이란 그림책이다.
준호는 뒷간에 쪼그리고 앉아 끄~응 힘을 주며 “똥아, 똥아, 느림보 똥아! 빨리 나와라.”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다 그만 똥통에 빠지고 만다. 무섭고 놀랬을 준호를 달래기 위해 할머니는 기지를 발휘한다. 측간 귀신과 똥떡이라는 옛이야기의 힘을 빌어 위기를 넘기려 한다.
할머니는 뒷간에 빠진 아이를 살려주는 액막이 떡이라며 정성스럽게 떡을 만든다. 뒷간에 빠진 아이를 위한 떡이니 `똥떡'인 것이라며 팥을 삶고 쌀을 찧어 동글동글 떡을 빚는다. 이렇게 만든 떡을 할머니와 엄마는 뒷간 귀신에게 먼저 드린다.
“뒷간에 살고 있는 성질 나쁜 각시 귀신이야. 이 귀신이 심통을 부려서 우리 준호가 똥통에 빠진 거란다. 뒷간 귀신의 화를 풀어주지 않으면 큰일이 나지”라며 똥통에 빠졌지만 아무 탈 없을 거라는 위안과 확신을 준다.
이 과정에서 준호는 똥통에 빠진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준호의 건강을 빌며 가족과 함께 정성스레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불안은 잦아들었을 거고, 이웃에게 `똥떡'이라 소문을 내며 직접 떡을 나누는 행위는 숨김으로 오는 수치감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니 말이다.
이렇듯 옛이야기의 서사 속에는 선인들의 세계관, 신앙, 의식, 사상 등이 담겨있다. 선인들의 시대정신은 옛이야기 그림책을 보며 오늘의 시대정신은 창작 이야기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은 마음을 다지고 건강하게 세우며 성장할 것이다. 내가 그림책을 사랑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