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행복한가?
복지談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있다. 이 책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인도 라다크를 찾는다.
라다크는 함부로 인간의 발을 허락하지 않는다. 라다크는 인도 북부로 파키스탄, 중국과 접경지대에 있다. 평균 해발 4000미터라 육로로 접근하는 시기는 일년중 단 5개월 남짓이다.
라다크 가는 길은 도로라기 무색한 길들이 있다. 혹여나 산사태로 인해 도로가 무너지면 복구하는데만 며칠이 걸릴 수 있다.
라다크에는 이런 말들이 있다. 내 몸의 일부가 햇볕에 있다면 피부가 타들어 갈 것이고 내 몸의 일부가 그늘에 있다면 동상을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햇볕은 따가운데 그늘진 곳은 추위로 허덕여야 한다. 그럼 저녁시간대는 어떻겠는가. 너무도 춥다. 단 5개월 정도만 그나마 여름이라 부르지만 나머지 기간은 상상 이상의 추위가 있다.
추위를 어떻게 이겨낼까. 우리식 난방이 있다면 어렵지 않겠지만 라다크 지형 자체가 민둥산이라 나무들이 많지 않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곳에만 마을들이 주로 형성되어 물을 공급 받고 일부 나무를 활용한다. 추위는 그냥 견디는 것이 라다크다.
헬레나 수지 여사가 이런 척박한 라다크에 살면서 쓴 책이 `오래된 미래'다. 문법상 맞지 않는 표현이지만 묘한 관심을 끈게 사실이다. 여러 사람이 이곳을 방문했다. 필자 역시 수차례 방문했다.
인도 영화 세얼간이 배경인 판공초 호수를 보러 많이들 간다. 라다크는 어느 순간 오래된 미래의 배경에서 벗어나 영화 촬영지 관광화로 변모한 인식을 남긴다. 라다크를 이해하고 있는 필자는 좀 속상한 지점이다.
필자는 라다크에 가면 뭘 하지 않는다.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오래된 사원인 꼼빠에서 조용히 스님들의 불경소리에 귀 기울인다. 길을 걷다 보면 누가 스님이고 누가 일반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뭔가 물건이라도 사려고 하면 상인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데 그들은 호객보다는 조용히 눈을 감고 불경을 읊조린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인근 꼼빠에 가서 오체투지나 코라를 돈다.
라다크에 있다 보면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어떤 욕심보다는 평온한 삶의 모습이 그들의 얼굴에 새겨져 있다. 라다크인들의 얼굴 자체가 평화이기에 인간의 미래 모습이 이곳에 있다고 헬레나수지 여사는 말했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지인들과 라오스 남부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우리식 눈으로 바라볼 때 가난한 그들의 삶을 본다. 일행이 말한다. 이들이 행복할까…난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웃음으로 대신했다. 생각해 보자. 행복이 무엇인가. 좋은 옷, 좋은 집, 좋은 차, 많은 돈…. 행복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라다크 한 청년이 서양텔레비전을 보고 서양 책을 보고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을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였던거다. 결국 그 청년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다 몇 년후 다시 라다크로 돌아왔다. 경험하지 않을 때는 이상향이고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막상 그곳은 지옥이었다. 식사를 하지 못하고 길에 누워 있는 노숙자를 보면서 라다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을 목격하게 되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본의 맛을 본 것이다. 라다크는 그렇지 않는데 말이다. 결국 자신의 고향이 가장 행복한 세상임을 알고 돌아온 것이다.
좋은 집이 뭘까. 라오스의 집들은 우기와 건기가 있기에 집을 띄워 이층공간이 주 생활공간이다. 더위로 인해 집은 최대한 시원한 목재와 대나무로 짓는다. 통풍도 잘 된다. 에어컨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우린 행복의 기준을 내 삶의 중심에 두는가. 남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두는가. 허영으로 인해 행복이 퇴색함을 느끼지 않는가. 휴가 시기다. 나의 행복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