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깎으며
김기원의 목요편지
`아무리 잘난 사람도/ 오른손이 오른 손톱을/ 왼손이 왼 손톱을/ 깎을 수 없어/ 왼손과 오른손이/ 사이좋게/ 서로 깎아주고/ 다듬어줘야 해/ 잡초처럼/ 뽑아내도 올라오는/ 헛된 욕심과 허물도/ 그렇게 솎아내야지/ 나는 너의 거울이 되고/ 너는 나의 반사경이 되어/ 서로 비춰주며 사는 거야/ 웃자란 손톱을/ 무시로 깎는/ 왼손과 오른손처럼'
제 두 번째 시집 `행복 모자이크'에 실린 `손톱을 깎으며' 시 전문입니다. 어느 날 손톱을 깎다가 문득 얻은 깨달음의 시이지요.
손에 익은 손톱깎이로 손톱을 깎는데도 오른손이 제 오른 손톱을 왼손이 제 왼 손톱을 못 깎고, 오른손이 왼 손톱을 왼손이 오른 손톱을 깎는 겁니다. 그것도 조심스럽게 정성 기울여서 말입니다. 부부생활도 대인관계도 손톱 깎듯 상대를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야 된다는 걸, 그게 사랑이고 상생의 길이라는 걸.
헛된 욕심과 사악한 생각도 손톱 깎듯 싹둑 잘라내고, 자신과 주위에 거울이 되고 반사경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이자 채근이었습니다.
각설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웃자란 손톱을 자르고 삽니다. 어릴 때는 부모나 보호자가 깎아주었지만 철이 들면 거개가 스스로 깎지요. 네일아트가 성업할 정도로 손톱이 멋과 미의 도구로 쓰임 받는 세상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현대인들은 아무 때나 손톱깎이로 손톱을 깎고 잘린 손톱을 대수롭지 않게 휴지통에 버리지만 손톱깎이가 발명되기 전에 살던 선인들은 칼이나 가위로 손톱을 깎았고 그러다보니 어두운 밤보다 밝은 낮에 깎아야 했고, 잘린 손톱도 신체의 일부분이라 여겨 함부로 버리지 않고 모아서 불에 태우기까지 했으니 수고로운 작업이었습니다.
아무튼 손톱은 작지만 참으로 유용한 신체조직입니다. 손의 보호기능뿐만 아니라 촉감을 구분하는데 도움을 주고, 물건을 집거나 튕기거나 할퀴는 기능도 하고, 예쁘게 단장하기도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주인의 위생과 미용을 위해 잘리고 버림받는 애꿎은 조직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손톱은 손가락 끝에 있는 타원형 또는 직사각형 모양의 두께가 약 0.5mm 되는 케라틴이라는 단백질로 구성된 반투명의 단단한 볼록한 곡면을 이릅니다.
손톱의 뿌리 부분 아래에 손톱을 자라게 하고 생성시키는 모체세포가 있어 특별한 장해가 없는 한 손톱은 계속 자라며, 영양 공급에 따라 표면의 형태가 달라져 건강상태를 짐작케 하기도 합니다.
손톱은 겨울보다 여름에 밤보다는 낮에 잘 자라며, 어른보다 어린이의 손톱이 더 빨리 자라고, 보통 30세 까지는 자라는 속도가 빨라지지만 이후에는 노화의 영향으로 더디게 자랍니다. 개인차가 있지만 손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더 빨리 자라고, 외부에 덜 드러나 있는 발톱보다 빨리 자라는 속성이 있습니다.
`손톱은 슬플 때 자라고 발톱은 기쁠 때 자란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우리 조상들의 삶이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았다는 반증이라 씁쓸하고 아립니다.
어릴 때 할머니로부터 `밤에 손톱 깎으면 귀신 나온다', `쥐가 깎은 손톱을 먹고 분신술을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는 손톱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은 까닭입니다.
손톱을 자를 때 나는 `딱 딱 딱' 소리를 귀신이 좋아하기 때문에 소리를 들으러 왔다가 귀신이 손톱을 깎는 사람의 몸에 그냥 들어가 버린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손톱깎이는 1896년 미국에서 최초로 발명되어 1905년 미국의 특허청에서 승인된 문명의 이기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 들어서서 김형규·형서 형제가 개발해 시중에 나왔는데 철을 대충 두드려 만들어 성능이 좋지 않아 일제나 독일제 손톱깎이를 선호하기도 했지요. 지금은 진화된 국산 손톱깎이가 널리 애용되지만.
새삼스레 열손가락 손톱을 지긋이 바라봅니다. 모두 건재해 흐뭇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깎고 살진 모르지만 잘려나갈 손톱을 위해서라도 조찰하게 살리라 다짐합니다.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의 손톱을 정성껏 깎아주듯이 그렇게.
/시인·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