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이곳에서

生의 한가운데

2025-08-21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산책길에서 도꼬마리 군락지를 만났다.

요즘 찾아보기 어려운 식물인데 이렇게 많이 모여 자라고 있다니, 반가운 마음에 한참이나 서서 바라본다.

도꼬마리 열매에는 접착 성능이 있다.

도꼬마리 씨앗이 잘 여물면 사방으로 돋아있는 갈고리 모양의 돌기가 있어 어디에든 붙기만 하면 절대 놓지 않는 것이다.

운동화나 등산복 등 일명 찍찍이라 불리는 기능을 생활용품에 접목하여 유용하게 쓰고 있다. 지금 내가 입은 웃옷 소매에도 그 찍찍이가 붙어있다.

이태 전의 일이다. 함께 늙어갈 줄 알았던 남편이 갑자기 떠난 뒤였다.

꽉 잡았든 끈을 놓쳐버린 상실감에 사로잡혀 허둥댔다.

딸은 홀로 남겨진 내가 불안해 보였던지 자주 시골집을 찾아왔다.

그리곤 어느 날 딸이 살고 있는 집 가까운 곳으로 이사 오기를 권했다. 여러 달을 고민 끝에 이사를 결정했다.

자식을 자주 볼 수 있고, 내 손이 필요할 때 손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사를 했다.

막상 올라가 보니 적응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꺼지지 않은 불빛, 빠르게 내달리는 자동차의 소음, 사람들의 바쁜 걸음을 나는 창을 통해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

쉼 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활력 넘치는 도시의 거리는 나와 무관했다. 어쩌다 시골에 왔을 때 어미에게 집중하던 자식도, 제집에서 생활인으로 돌아갔을 때는 자기 스케줄에 맞춰 사는 것이 당연했다.

나로서는 만나는 사람, 자주 가는 찻집 등등, 시골에서 누리던 익숙함과 자연스러움이 사라진 도시 생활이 나를 외롭게 했다.

군중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혼자일 때의 외로움과 사뭇 달랐다. 잘 가꾸어놓은 아파트 정원의 화초들 속에 엉뚱하게 끼어든 한 포기의 도꼬마리처럼, 나는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도시는 내가 뿌리내릴 수 없는 너무나도 낯선 환경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식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핑계를 대면서, 사실은 자식에게 의지하고 싶어 도꼬마리의 돌기 같은 마음으로 갔던 것이 아니었을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비워두었던 시골집으로 내려왔다.

자식에게 저만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나도 나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해서다.

시골집으로 내려온 지 반년이 넘었다. 십년지기 문우들이나 봉사단체 회원들은 내게 큰 재산이다.

자매처럼 지내는 문우와는 같이 여행하고, 함께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중고 서점을 뒤져서라도 구해 읽는다.

이것은 여행이나 독서라는 단순한 기쁨도 있지만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자양분도 된다.

봉사단체 회원들과는 요양원 어르신들은 찾아뵙거나 농촌 일손 돕기를 한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내가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한다. 그것은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일이기도 하다.

도꼬마리는 마을의 빈터나 밭머리, 길가 등등의 익숙한 곳에서 잘 자란다.

나도 늘 오가던 거리의 정겨움, 문우들과 나누는 대화, 봉사단체 회원들과 농촌 일손 돕기 하는 이곳이 편안하다.

이제 더는 욕심 내지 말고 익숙한 이곳에서 내 삶의 뿌리를 튼튼하게 내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