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노래

2024-08-26     김태봉 서원대 교수

여름에 피어 가을까지 피어 있는 꽃이 연꽃이다. 그래서 연꽂은 여름꽃인 동시에 가을꽃이기도 하다. 절기상으로 처서가 지나면 여름 기운이 꺾이고 서서히 가을 느낌이 돋기 시작한다. 이 간절기에 꿋꿋이 피어 있는 꽃이 바로 연꽃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은 연꽃 따는 장면을 통해 가을 정취를 묘사하였다.





연꽃 따기(採蓮曲 )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가을 되어 맑아진 긴 호수에 옥빛 물결이 흐르는데



蓮花深處繫蘭舟(연화심처계난주) 연꽃 속 깊숙한 곳에 목란배가 매어 있네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련자) 낭군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지고는



或被人知半日羞(혹피인지반일수) 혹시 다른 사람에게 들켰을까 한나절 내내 부끄러워 하네.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데도 연꽃은 왕성하게 피어 있다. 가을 되니 물이 맑아져 연꽃 사이를 흐르는 물이 푸른 옥빛을 띠었다.

연꽃 핀 호수의 정취가 한결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이 분위기 좋은 연꽃 호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는 아마도 젊고 어여쁜 아가씨일 것이다. 연밥을 따기 위해 배를 타고 왔지만, 그 모습은 우거진 연꽃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타고 온 배가 묶여 있을 뿐이다. 목란 나무배인 것으로 보아 지체 있는 집안의 어여쁜 처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연꽃 호수에는 그 처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또 다른 지체 있는 집안의 늠름한 도령도 거기서 연밥을 따고 있었던 것이다.

금방이라도 청춘 남녀의 로맨틱한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세팅이 아닐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으니, 처자가 물 건너에서 일하고 있던 도령에게 연밥을 던져 버렸던 것이다.

구애의 욕구를 어쩌지 못하고 일을 저지르고만 처자는 금방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구애의 상대인 도령에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구애의 장면을 다른 사람이 지켜보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연꽃이 우거져 있어서 그 안에 사람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좀처럼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 부끄러움은 얼마나 심했던지 한나절 동안이나 지속되었을 정도였다. 젊고 순박한 처자의 당돌한 구애 심리와 우거진 연꽃 광경을 동시에 잡아낸 시인의 솜씨가 탁월하다.

아무리 무덥고 길게 느껴지더라도 어차피 여름도 한 철이다. 연꽃 가득한 호수는 여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가을을 맞는다.

여름을 피할 게 아니고 여름 정취를 찾아 즐기다 보면 여름이 가는 게 도리어 안타까울 것이다. 시원한 연꽃 호수에서 펼쳐진 러브스토리를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여름의 존재가 소중함을 느낄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언어문화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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