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갔다

화요논객

2024-08-26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제가 노조 출신이고, 제 아내도 노조 출신이고, 우리 형님도 노조 출신이고, 제 동생도 노조를 만들다가 감옥까지 두 번 갔다 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반노조'다 이런 말을 하는 분은 어떤 분인지, 대체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묻고 싶습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최근 임명 반대를 주장하는 노동계를 향해 쏟아놓은 볼멘소리다.

맞다. 그는 40~50년 전인 1970년대, 전설적인 노동운동가였다.

그때와 변함이 없는 그 김문수였다면 현 정권이 그를 고용노동부 장관에 내정했을까?

그럴 리 없다. 그는 변했다. 변한 지 한참이나 됐고, 형질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 글은 정치이념의 관점에서 쓰는 글이 아니다. 여러 측면에서 사람이 변하는 건 당연하다.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그런데 변한다는 게 대개는 발전이나 퇴보이고, 신체든, 정신이든 성장과 절정기를 거쳐 원숙의 시대를 걷다가 시들고 소멸하는 게 만유의 법칙이다.

물론 반전(反轉) 수준의 변화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알고 있던 것의 실상이 그렇지 않음을 알고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다.

때로는 세상이 먼저 변하기도 한다. 국가 체제로서 사회주의의 몰락이 그 예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단언할 때는 아니다. 자본주의와 체제 경쟁에서 패배했을 뿐 자본주의의 모순 치유와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필요한 처방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유용하다.

국가로서 사회주의는 소멸했지만, 이제는 자본주의 안에 사회주의가 있다. 살기 좋은 복지국가일수록 무상급식, 무상의료, 기본소득, 사회보험 등 사회주의 요소의 비중이 높기 마련이다.

스스로 바꾸었든 세상의 변화를 따라갔든 가치관이 바뀌었다면 일단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게 먼저다.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하게 된 것이니, 먼저 자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영환 충북지사의 솔직한 고백도 들어보고 싶다.

자신의 과거를 끝내 부정할 수밖에 없다면 대중 앞에 나서지 말고 조용히 살라고 권하고 싶다. 방향을 바꾸어 새 길을 가는 상황을 `전향(轉向)'이라고 하는데, 그 진정성을 100%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오류가 타인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다면 함구하는 게 타당하다. 자신의 전향이 계속 한길을 가는 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성숙한 인간이다.

나아가 만약 전향이 개인의 영리와 안녕을 위한 이기적 선택이라면 전향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조차도 부적절하다. 그럴 때 적합한 말은 변절이다. 변절한 사람이 권력과 지위를 탐하며 다른 사람 위에 계속 군림하려 든다면 이는 집단의 불행으로 직결된다. 그런 사람이 쏟아내는 말들은 횡설수설 막말이 될 수밖에 없다. 몇 번의 자기 부정, 사회 부정을 수반한 탓에 그의 머릿속은 엉켜있기 마련이다.

실제로 우리는 김문수 내정자가 3선 국회의원과 재선 경기도지사를 지내는 동안은 물론이고, 야인이 되어 태극기 집회를 맴돌면서 쏟아낸 수없는 막말에 귀를 씻기 바빴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부 장관에 내정된 인사이니 대통령 관련, 노동 관련 막말만 하나씩만 골라보자면 “뻘건 윤석열이 죄 없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잡아넣었다.”, “불법 파업엔 손해배상 소송이 특효약” 등이 있다. 그의 막말 리스트를 열거하면 임용하려는 대통령의 결단이 놀라울 따름이다.

사람의 변화를 흔히 `맛'에 비유하기도 한다. `맛이 들었다'라고 하고, `익었다'라고도 한다.

스스로 전향이라고 하나 타인이 인정할 수 없는 변절은 `변했다'라고 하는데, 그러고도 막말을 쏟아낸다면 `맛이 갔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