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결들의 정북동토성
Dr. Jung의 호서문화유람
정북동토성은 청주를 남에서 북으로 가르며 흐르는 무심천이 초평에서 흘러오는 미호천과 만나게 되는 까치내(鵲江) 주변 팔결들의 남쪽편에 위치한다.
조선 영조때 씌여진 승병장 영휴의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는 궁예와 견훤이 대립하던 때 견훤이 궁예의 상당산성을 탈취하고 상당산성 서문쪽 방향인 까치내 곁에 토성을 쌓고 창고를 지어 부세(賦稅)로 받은 양곡을 보관하였다가 상당산성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전한다.
하지만 평지에 축조된 네모꼴의 토성은 고대 중국의 방형토성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국내에는 그 사례가 드물어 `오히려 3세기경 전쟁 목적보다는 호족들의 지배를 위한 거점으로 축조된 토성'으로 보기도 한다.
1975년 이원근에 의해 처음 소개된 이후 1984년 차용걸교수에 의해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1990년에 충청북도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다.
1997년 충북대 호서문화연구소가 1차 발굴조사를 마치고 1999년 사적 415호로 되었다가 2021년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지금처럼 정비되기 이전에는 성내를 동서로 가로지른 주 동선 북편으로 약 20여호의 민가가 있었고 반대편에는 경작지가 펼쳐져 있었다.
특히 남문과 북문은 방어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좌우의 성벽을 서로 어긋문 구조로 설계하여 옹성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방 모서리에는 치성 또는 각루의 시설이 있었고, 또 동쪽과 남쪽으로는 해자의 형태와 4곳의 우물터도 발견되는 등 전형적인 토성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나라 초기 토성의 축조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675m, 3507평 규모로 정방형에 가깝다.
기초없이 순수판축토성 방식으로 축조된 성벽의 윗부분은 2m 남짓 넓이로 되어 있어 느릿느릿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중요사적이라는 타이틀을 뒤로한 채 지금은 동남편 성벽위에 심어져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로 인해 가을 해질녘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는 전국적인 일몰명소로 알려져 있어 가족단위 방문객과 젊은 연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성내에는 잔디밭으로 잘 가꾸어져 있어 돗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연을 날리며' 그야말로 호젓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현재 청주시에서는 수차례의 주변정비사업을 거쳐 시민들 모두가 찾을 수 있는 역사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에 따르면 `전통수종을 활용한 꽃밭, 산책로 등 테마의 길을 조성해 전국에서 가장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 부각시키고, 문화재적 가치와 더불어 시민들이 힐링할 수 있는 꿀잼도시의 면모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인데, 부디 지금껏 유지해온 사적으로서의 역사적 정체성, 주민 모두가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고즈넉함이 파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공원조성사업이 추진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를 통해 가까이 있는 상당산성, 부모산성, 우암산토성 그리고 청주읍성 등과 연계하여 `성곽도시 청주'로서의 역사성을 자리매김하는 것도 꽤나 바람직할 듯 싶다.
어느 가을날, 도심에서의 팍팍한 일상에 지쳐 불현듯 목가적 풍경이 아련해질 때, 그 때는 팔결들의 정북동토성을 찾아가 보라. 토성 주변의 잔잔하게 일렁이는 들녘 풍광은 결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