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물리 장난감
물만 보면 발만 담그겠다고 하다가 결국 다 젖어버리는 아들을 위해 항상 여벌 옷과 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여름이다. 아니, 9월 가을이 되었다. 사서들이 가장 공들이는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독서문화 진흥법에 명시된 `9월 독서의 달'이기에 다양한 행사가 가득하다.
`5g의 가볍지만 위대한 세상을 펼쳐보세요'라는 주제로 독서문화 진흥 캠페인을 진행한다. 책 한 장의 무게는 5g에 불과하지만 책을 한 장씩 넘기면서 경험하는 바는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를 담은 슬로건이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지난 7일에 `김범준 교수와 함께 떠나는 일상 속 과학여행'이라는 주제로 증평교육도서관에서 독서의 달 강연이 열렸다.
일명 범물리, 범준에 물리다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성균관대 교수이자 다양한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와의 만남이었다. 얼마나 유명한 분이시기에 지역에서 주말 오전에 이런 고급스러운 주제 강의를 자발적으로 들으러 오는 사람이 많을까? 하는 호기심에 증평으로 갔다.
1m 등 거리의 단위와 빛의 속도로 측정하는 시간의 단위 등 물리학적으로 세상을 정의내리는 내용부터, 북극에서의 몸무게와 적도에서의 몸무게는 같을까? 라는 아이에게 오늘 엄마 이런 거 배우고 왔어! 알려 줄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까지, 정말 물리학에 대해 1도 관심이 없었던 사람에게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집중하게 만드는 강의였다.
하은아 관장님께서 패들렛에 모인 질문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진행하셨는데, 인생책 코스모스가 앞부분만 새카만 수학의 정석과 같이 언젠가는 꼭 다 읽어야 하는 숙제 같다는 공감되는 진행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범고래가 쎄요? 코끼리가 쎄요? 라는 유치원생의 질문에도 진지하게 실험을 위한 기본 전제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주시는 센스에 한 번 놀라고, 물리학 말고 두 번째로 좋아하시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논어를 비롯한 고전이나 오언절구나 칠언절구를 한문을 해석하며 읽어내는 것이라고 하셔서 또 한 번 입이 떡 벌어졌다.
질의응답 시간 후 사인회에서 물리1 교과서에 싸인을 받아가시는 물리선생님과 플레밍의 왼손 법칙을 표현하는 사진 포즈를 하려는 고등학생들과 대학에선 오른 나사 법칙으로 찍는 거라며 엄지척 하시던 교수님의 티키타카, 그리고 어떻게든 웃지 않을 것 같은 사춘기 남학생이 셔터를 누르는 순간 보여준 잠깐의 미소가 강연에 참여한 사람들의 교수님을 향한 팬심을 느끼게 했다.
집에 와서 일상 속 사물들에서 찾은 신기한 과학원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교수의 신간 `김범준의 물리 장난감'(김범준·이김) 책을 펼쳤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왜 젖은 옷을 입으면 안되냐'는 아들의 질문에 감기걸린다니까!라는 대답에 더해 이제는 기화열까지 더욱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수식까지 쓰여 있어서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책인데, 대충 스킵하고 아는 만큼만 읽으면서 넘겨도 재미있고 책장이 잘 넘어가는 책이었다. 어디에나 있는 물리와 삶의 본질에 대한 문장이 담긴 인문고전이 단번에 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렇게 조금씩 친해져도 좋다는 점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