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시
生의 한가운데
`디카 시' 강좌를 듣고 있다. 디지털카메라나 핸드폰으로 직접 찍은 사진을 보고 5행 이내로 지은 시를 디카 시라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외계어 같은 용어에 순전히 호기심으로 등록했다. 선생님께서는 거시적 보다는 미시적인 안목으로 시의 소재를 찾아내야 하고, 찰나의 현상에서 삶이나 내면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사진 50%, 시 50%의 비율로 사진을 보면서 글을 봐야 한다고도 하셨다. 심지어 대한민국이 디카 시의 발상지라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지으려면 우선 사진이 있어야 한다. 수많은 대상 중 뭔가 가슴을 울리는 소재를 찾아 찍는 것부터가 시의 시작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더니 하나, 둘 사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꾸 이것저것 허둥지둥 찍어대기만 할 뿐 막상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아도 시상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별생각 없이 마당을 내다보는데 능소화가 눈에 띄었다. 저거다! 뭔가 느낌이 왔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가슴이 울리는 소재라는 게 이런 것일까. 빛의 속도로 핸드폰을 들고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능소화는 딱 한 송이가 피어있었다. 얼마 전 한바탕 붉은 꽃을 폭죽처럼 잔뜩 피워대더니 뚝뚝 제 발치에 모두 떨어뜨려 버리고, 다시 또 새로운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느 해 홀연히 죽어버린 산벚나무 둥치를 타고 오른 능소화였다. 그해 봄에 벚꽃이 얼마나 탐스럽게 피었었는지 꽃이 질 때도 정말 아름다웠다. 산들바람이 불던 날 눈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꽃잎을 맞으며 동영상을 찍기도 했었다.
하지만 꽃이 지자마자 잎이 하나, 둘 맥없이 떨어지면서 시름시름 앓더니 머지않아 겨울나무처럼 마른 가지만 남게 되었다. 온 세상이 녹음으로 푸르를 때도 벚나무만 혼자 엄동설한이었다. 원인을 찾아 살려보려고 별별 이유를 다 생각해 보았지만, 도대체 영문을 몰랐다.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하며 두 해를 기다리다가, 잔가지마저 모두 말라버리고 둥치만 기둥처럼 우뚝 남게 되었을 때 벚나무 곁에 능소화를 심었다.
능소화는 앞으로 축 늘어진 가지 끝에 꽃이 피어 흡사 나에게 꽃다발을 불쑥 내미는 모습 같았다. 사진을 찍고 보니 무성한 능소화 이파리에 가려진 검은 벚나무 둥치가 보였다. 얼핏 보면 둘이 한 나무처럼 여겨졌다. 둥치는 습기를 머금어 축축하고 이미 썩고 있는지 푸석푸석했다. 제 꽃 대신 낯선 넝쿨을 몸에 칭칭 감고 묵묵히 무게를 지탱하는 모습이 왠지 경건해 보인다.
능소화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았다. 그때 `선뜻 둥치를 내어준 벚나무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바친다.'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한 문장으로 시를 끌어낼 수 있을까. 능소화는 벚나무에게 무엇이 고맙고 무엇이 미안한 것일까. 그때 `장기기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눔, 희생, 연대…. 무수히 많은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시 디카 시 수업 시간이 되었다.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 발표해야 한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칠판에 붙여 놓고 그 사진을 통해 떠올랐던 시나 문장을 사진 밑에 적은 후 이유를 설명한다. 선생님께서는 내 장황한 설명 안에 시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고 하셨다.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강생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깊은 고민과 사색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렇게 감미로운 고뇌가 있을까. 적합한 문장과 단어를 찾아 헤매는 이 시간이 너무도 행복하다. 그렇게 나의 첫 디카 시가 완성되었다.
헌화(獻花) - 너의 죽음이 나를 살렸어, 내가 무성해질수록, 너는 점점 스러져, 미안해, 이 꽃을 너에게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