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가 노벨상을 받아도…

2024-10-17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이다.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사에 한 획을 그어버린 장대한 쾌거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온 국민이 열광하고 전율하고 있다.
노벨문학상이 어떤 상인가. 태고에서부터 억겁의 세월 동안 생멸하며 내려온 인류의 ‘정신줄’을 올곧게 붙들어 매어주고, 삶의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을 노래하여 주는 이들을 세계 최고로 기려 주는 상이 아니던가.
가히 여러 부문의 노벨상 중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그 상이 대한민국의 딸, 한강의 품에 안겼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 몇 날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변은 흥분의 도가니다. 출판사들은 한강의 책을 새로 찍어내느라 밤샘작업을 하고 있고, 서점가는 선주문 행렬에 즐거운 비명이다. 서점가에 따르면 한강의 책들은 증쇄본이 속속 서점에 도착하면서 벌써 70만부를 훌쩍 넘어 판매 부수 100만부 돌파를 앞두고 있다. 작가의 책 중 친필 사인을 받은 초판본은 몇십만원의 웃돈이 붙어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팔리는 진풍경도 벌어지고 있다.
세계 문학계도 환호하고 있다. 구미 선진국에서 한강의 책을 사려는 이들이 서점에 줄을 서고 있으며, 외신들은 일제히 한강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한국 작가가 여성인 점을 조명하며, ‘한국에서 여성이 한국 문학의 노벨상 가뭄을 끝냈다’는 유명 번역가의 말을 인용했다.
또 평론가의 ‘채식주의자’ 리뷰를 인용해 “한강은 한국에서 선견자(visionary·미래를 내다보는, 귀감이 되는 인물)로 정당하게 칭송받아왔다”고 전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문학교수인 안키 무케르지는 “한강의 글은 몸의 정치, 성별의 정치, 국가에 맞서 싸우는 정치를 다룬다”면서 “그러면서도 문학적 상상력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글을 매우 유쾌하게, 초현실적으로 쓴다”고 평했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문학 작품 번역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996년, 뒤늦게 문학 작품 번역의 중요성을 인식, 번역을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한국문학번역원(출범 당시 재단법인 한국문학번역금고)을 설립했다. 이를 계기로 우리 K-문학의 번역 지원 작업을 시작, 지금까지 44개 언어권에 2171건의 번역 출간을 지원했다. 번역원은 한강의 작품도 2007년부터 지금까지 28개 언어로 번역해 전세계에 76종의 책으로 출간했다. 이게 노벨문학상 수상의 초석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번역계는 아직 토양이 부실하다. 실제 전업 번역가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수입이 일반 중견기업 연봉보다 적은 게 현실이다. 한강의 수상 소식에 앞서 온라인에서는 한 전업 번역가가 생활고를 호소하며 투잡, 쓰리잡을 뛰어다니는 자신의 ‘활약상’을 공개해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이제 문화체육관광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 문학계는 제2, 제3의 한강이 활동중이며, 아니 이미 한강을 뛰어넘어 문장력을 인정받은 문인들이 즐비하게 많다. 토지의 박경리가 노벨상을 받는다고 해도 새삼 이상하지 않은 게 우리 문단의 ‘내공’이고 현주소다.
기술직과 행정직을 포함해 전 직원이 고작 60여 명인 한국문학번역원의 씁쓸한 현실.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으로 노벨문학상의 맥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