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켜야 할 충북의 山水

충북문화유산의 이야기

2025-10-27     윤나영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이제껏 자연은 불변의 존재였다. 장생불사의 상징 `십장생'의 선두에는 해·달·구름에 이어 산, 강, 바위가 있었다. 선조들에게 산수(山水)는 자연을 대표하는 불변의 존재였고, 그 안에 인간은 유한하며 한없이 작은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유한한 작은 존재로 인해 자연은 불변의 지위를 잃어가고 있다.

기후위기를 비롯한 최근의 변화양상은 수천 년을 버텨온 우리의 소중한 유산들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자연유산에 미치는 영향은 해당 유산의 존폐를 결정할 만큼 엄청나다. 올해 국정감사 때 이슈가 된 산양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산양이 지난 겨울, 때 이른 폭설과 먹이 부족으로 많은 개체가 폐사하였다. 이런 위기가 어디 동식물 유산에만 해당할까? 선조들이 십장생의 선두로 꼽았던 산수조차 이제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충북의 산수는 예부터 아름다운 풍광으로 이름 높은 명승으로 손꼽혔다. 특히 현재 제천, 단양 지역에 속하는 제천, 청풍, 단양, 영춘 4개 지역을 묶어 사군(四郡)이라 했는데, 이 지역의 산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의 으뜸이라 할 만큼 그 명성이 높았다. 18세기 편찬된 지리지 『여지도서』 도담(島潭) 편을 살펴보면 이곳의 풍광을 두고 “금강산에 이와 같은 물이 없고 한강에는 이와 같은 산이 없으니 우리 조선에서 제일가는 강산이 된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이처럼 이름 높은 충북의 산수였기에, 퇴계 이황, 단원 김홍도,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 수많은 선비들이 충북의 산수를 찾아와 그 풍광에 감탄하며 그 심경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물과 어우러진 기암절벽에는 그에 걸맞는 이름이 암각자로 아로새겨졌으며, 산수에 대한 예찬은 시가 되고, 그들이 바라본 풍광은 화폭 속에서 신선이 거주하는 세상의 모습으로 후세에 전해졌다. 이런 작품들은 단순히 한 사람이 느낀 한 순간의 감상에 그친 것이 아니다. 1512년 단양군수 임제광이 「유람할만한 단양산수 관련 기록(丹陽山水可遊者記)」를 남기니, 후임으로 단양군수에 부임한 이황이 그 기록을 보충하여 「유람할만한 단양산수 기록 속편(丹陽山水 可遊者 續記)」을 남겼으며, 그 뒤를 이어 17세기 문인 윤순거가 이황의 뜻을 이어 또다시 그 속편 격인 「단양 산수기록 속편에 덧붙이는 글(丹陽山水續記後錄)」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처럼 충북의 산수에는 이곳을 다녀간 선비들의 정신이 마치 나이테가 쌓여가듯 켜켜이 어려있다.

하지만 이 소중한 유산들이 언제까지 우리 곁에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이미 1985년 충주댐 건설로 남한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이 지역을 대표하는 구담봉, 옥순봉과 같은 기암절벽의 규모는 크게 줄어들었고, 매년 여름 반복되는 녹조와 부유쓰레기로 그 아름다움은 빛을 잃고 있다.

더욱이 올해 7월 기후위기댐 건설 후보지로 단양이 언급되면서, 단양군의 민심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다행스럽게 최종 후보지에서 제외되기는 했지만, 자칫하면 충북을 대표하는 자연유산을 또다시 잃을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아찔해진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물론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당연히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이와 더불어 충북 자연유산이 가진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우리 세대 더 나아가 미래 세대에 전달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임제광의 글을 이황과 윤순거가 이어갔듯이, 충북 산수에 서린 선조들의 정신문화에 지금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정신을 덧붙여 나간다면, 그 또한 충북의 산수를 지키는 일이 되지 않을까?

마치 우리가 단원 김홍도의 「병진년화첩」과 추사 김정희의 시 속에서 옛 단양 사인암의 모습을 찾듯, 우리 후손들은 우리가 남긴 기록을 통해 21세기 충북의 산수를 그려볼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