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연대기

충북문화유산의 이야기

2025-11-03     박종선 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올해 5월 문화재보호법이 국가유산법으로 전환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를 넘어 현재와 미래를 담아내었다는 점이다.

기존 문화재보호법 제3조의 문화재 보호의 기본원칙에서는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은 원형 유지를 기본원칙으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었던 반면, 새로운 국가유산법에서는 원형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유형적무형적 가치의 전승, 적극적인 공개와 활용, 지역성과 다양성 등의 단어가 새롭게 들어왔다.

그동안 이 원형이란 단어는 수많은 논쟁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과연 나라는 사람의 원형은 무엇일까? 세상에 태어나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가지게 되는 순간이 원형일까? 유년시절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자아를 형성해 가며 성장해 나가던 순간일까? 청년시절 새로운 도전과 세상에 발걸음을 떼며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을 뽐내는 시점이 원형인걸까? 노년이 되어 지나온 세월의 켜켜이 쌓인 경험과 추억들이 단단한 내공으로 자리잡은 백발 노인의 모습이 나의 원형인걸까?

국가유산도 마찬가지이다.

경복궁을 복원하기 위해 원형을 따진다면 정도전이 세운 조선 초의 경복궁이 원형인지,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운 경복궁이 원형인지 논란이 생긴다.

원형의 논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경복궁이 창건된 이후 현재까지 그 안에 켜켜이 쌓아져 온 역사이며, 경복궁이라는 유산의 가치와 그 안의 담긴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이다.

충북에 있는 수많은 국가유산들도 마찬가지이다.

곳곳에서 원형을 찾는다며 유산 주변의 경관부터 유산 그 자체에 대한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청주시에서는 꾸준히 용두사지 철당간 주변 공간을 역사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물론 용두사지 철당간은 국보이자 청주, 더 나아가 충북을 대표하는 고려시대 국가유산이다.

하지만 동시에 천년을 넘는 시간 동안 청주의 중심에서 청주의 사람들과 함께 청주의 이야기를 담아낸 청주의 랜드마크이다.

기존의 원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유산의 공간이란 측면에서만 접근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를 넘어 천년의 시간동안 유산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소로서 역할을 생각한다면 정비의 기준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고려 광종 시대 만들어진 철당간의 원형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조선시대 청주 읍성의 중심지로 배 형국의 청주읍성의 돛대로서 주성(舟城)의 역할을 다하던 시기와 일제강점기 철당간 속에 들어있던 불상 등 성물이 꺼내지면서 균형을 잃고 기울어진 철당간을 바로 잡고자 시멘트를 부어 낸 이야기, 청주 시내의 중심지로 청주 최초의 극장이 자리잡고, 청주를 대표하는 음식점(백로식당 본점 등)이 자리했던 광장의 역할을 감당한 근현대 시기까지, 용두사지 철당간이 가진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쌓여가는 가치는 하나의 시기로 고정되지 않는다.

즉 국가유산은 한 순간으로 정의되는 개체가 아니라, 마치 인간의 삶처럼 연대기를 담고 있는 복합적인 유기물인 셈이다. 그렇다면 국가유산만을 보전하기 위하여 창건 당시의 원형을 고집하기보다는 천년의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온 우리네 삶의 이야기에도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국가유산기본법 제5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국가유산을 알고 찾고 가꾸어 새로운 가치를 더하며, 이를 차별 없이 자유롭게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천명하고 있다.

이 법의 조문처럼 이제는 과거의 가치에만 고정된 문화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새로운 가치를 더하며 만들어가는 국가유산 연대기를 써 내려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