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生의 한가운데
벼 포기가 오체투지 하듯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들판을 가르마를 타듯 콤바인이 지나가면 꼿꼿하던 벼 포기가 저항도 없이 드러눕는다. 벼는 물먹은 솜처럼 미동도 없다. 어느새 누렇게 장관을 이루던 들판은 너른 광야로 변한다. 들녘을 보고 있자니 어깨에 삽자루를 둘러메고 논둑을 누비던 아버지 모습이 선하다.
아버지는 한여름이면 피사리하느라 여념 없다. 벼 사이사이에 우후죽순 올라온 피를 수시로 뽑는다. 논에 피가 많이 자라면 수확도 덜하고, 무엇보다 농부가 게을러 보인다. 발목까지 빠지는 진흙 속 피사리 작업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허리를 잔뜩 굽혀 피를 뽑고 있으면 날카로운 벼 이파리에 팔뚝과 얼굴이 긁히는 것은 다반사이다. 그래서 형제들은 피사리를 싫어한다. 언니와 오빠는 자취생활로 주말에야 오지만 농사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도망 다니기 일쑤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자취생활로 중, 고등학교를 도시에서 유학한다. 부모님의 농사 거리로 육 남매의 뒷바라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늘 제자리걸음이다. 우리도 객지에서 자취생활은 변변한 찬도 없이 대충 끼니 때우는 일이 대부분이다. 홀로서기하는 우리는 지난한 환경에 속울음을 삼키며 서로 보듬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끝내 언니는 맏딸로 대학 입학을 포기하고 동생들 뒷바라지로 일선에 나선다. 욕망에 눈이 먼 나는 맏딸인 언니의 결정이 당연하다 여겼다. 나이를 먹고 돌아보니 언니의 희생이 가슴에 깊은 응어리로 남아 아프다. 시골 아버지도 농사일을 그루터기에 앉아 늘 구상하지만 맏딸은 아픈 손가락이었으리라.
어느새 가을걷이가 시작된다. 자신보다 자식을 위해 농사일로 손톱이 닳고 문드러져도 당연하다 여긴다. 가으내 추수한 잡곡을 멍석 위에 펼쳐놓고 도리깨질하느라 부모님의 손바닥은 굳은살이 박인다. 그때부터 도정 기계도 쉴 사이 없이 돌아간다. 육 남매 자취생활 양식으로 도정 기계를 돌리며 부모님은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어느덧 창고 선반에 들깨, 콩, 잡곡 등이 쟁여진다. 부모님은 창고의 양식만 봐도 든든했으리라.
아버지는 품앗이로 고단할 때면 감나무 아래 그루터기에서 담배 한 모금으로 시름을 달랜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휘청거릴 때도, 가슴 벅찬 삶도 그루터기에 앉으신다. 때때로 막막함이 당신의 어깨를 짓누를 때도 그 자리에 앉아 삶의 고요를 찾는 듯싶다. 그루터기는 그저 거목이 잘린 밑동이 아닌 듯하다. 아버지에게 그루터기는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동반자다. 삶의 어려운 형편을 남몰래 소리 죽여 우는 아버지의 모습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구순을 목전에 둔 아버지는 노구의 몸으로 벼농사가 힘들어 위탁 영농에 맡긴다. 가래질하던 다랑논은 농지 정리되어 바둑판처럼 평평하고 반듯하다. 아버지는 지팡이에 의존할 만큼 거동이 불편하다. 그루터기에 잠시 앉아 세상을 벗 삼아 삶을 회상하는 아버지 모습이 애잔하다.
아버지는 볕 좋은 날이면 깊은 상흔으로 얼룩진 그루터기에 방석을 깔고 앉는다. `자부동 없이는 앉을 수 없어'라며 쇠진하게 내려앉은 그루터기를 어루만진다. 거친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쩌렁쩌렁하던 음성도 작게 떨린다. 아버지의 듬직한 어깨는 온데간데없고, 먼 곳을 응시하는 등 굽은 노인의 모습이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면 철이 든단다. 아버지의 뒷모습에 묻어나는 삶의 흔적이 뭉클하다.
그루터기와 아버지는 닮았다. 거목이 밑동만 남은 것도 그렇고, 허리 굽은 아버지의 쇠잔한 모습이 그렇다.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로 그날의 기운을 알아차리는 그루터기이다. 당신도 그루터기를 어루만지며 속내를 쏟아내며 삶을 위로했으리라. 온몸으로 풍파를 막아주던 그루터기가 있어 다행이다. 농심을 지키는 버팀목 같은 아버지 헌신의 삶이 있어 내가 여기에 올곧이 자리한다. 달빛이 물 위에 내려앉는다. 삶의 긴 여정을 말없이 서로 의지하며 보듬는 그루터기에 앉은 아버지가 등불처럼 환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