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최민식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19.01.0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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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를 말하다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사진이야말로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예술이죠. 사진은 국가를 초월한 모든 인류의 빈곤과 불의, 인권과 억압을 추방하고 더 아름답고 행복한 인간다운 삶이 되게 하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휴머니스트 사진가 최민식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70여 년 동안 오직 인간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묘사하기 위해 인간의 사랑과 기쁨, 슬픔과 절망의 삶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실제 그의 사진은 보면 볼수록 인간정신 표현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찌든 주름살의 노인, 길바닥에 초라하게 앉아 있는 걸인, 힘없이 늘어진 아이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사회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소외계층 사람들이다.

그는 왜 일찍이 이러한 사진에 빠져들었을까. 그가 결코 얄팍한 동정심이나 연민의 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 서민에게서 참다운 인간의 면모를 가슴 깊이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28년 황해도 연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고향에서 마치고 평안남도 전남포에 있는 미쯔비시기능자양성소에서 2년 동안 교육을 받은 후 기능공으로 근무하다 광복을 맞았다.

화랑무공훈장(은성, 무성)을 두 개씩이나 받고 철도연대를 제대한 그는 1955년 부산에서 일본으로 밀항해 낯선 이국땅에서 낮에는 인쇄소와 식당에서 일하고, 밤으로 토오쿄오중앙미술학원에서 공부한 후 일본인 친구들과 호기심으로 중고 카메라를 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957년 귀국해 가톨릭계인 한국자선회에서 다시 사진을 시작한 그는 도덕적 인상주의개념을 가진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사진에 매료되어 인간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으니 이것이 그가 인간 사진작업을 하게 된 시초라 하겠다.

1967년 영국사진연감(Photography Year Book)에 그의 사진 6점이 수록됐고 `스타사진가'로 선정되는 등 `카메라의 렘프란트'로 격찬을 받았다.

이렇게 그의 사진에 대한 명성이 높아가면서도 한편으로 지독한 가난은 어느 하루 편한 날이 없었다. 그에게 가난 말고도 또 하나 크나큰 곡절이 있다. 서슬이 시퍼렇던 독재 시절 그가 외국에 발표한 사진들을 북한에서 찍어 가역 선전했다는 것과 사진집에 담은 내용이 왜 가난한 사람들뿐이냐는 등의 이유로 기관에 불려가 모진 고문과 매질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간첩으로 몰렸던 적은 백번도 더 되고, 지나가는 사람을 찍다가 파출소에 끌려갔으며, 사람들에게 심한 욕설과 몸싸움으로 옷이 찢기고, 카메라가 박살 나기도 했는데 심지어는 법정에 서게 돼 벌금을 낸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난이 얼핏 사회비판적 사진으로 보여졌다 해도, 그의 시각 전달작업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위대한 인간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며, 민중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정신으로 찍은 사진들이 후세에 가치 있는 유산이 될 수 있음을 사진 철학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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