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 이상애 미술학 박사
  • 승인 2019.04.1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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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에 가본 사람이라면 중앙 홀에서 가장 먼저 관객을 반기는 비디오 아트의 시조인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을 보았을 것이다. 개천절인 10월 3일을 의미하는 1003개의 모니터들이 제각기 빛의 소리를 내며 하모니를 이루는 작품이다. 이제 우리는 비디오아트를 예술이라 이름하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세기 전만 해도 미디어를 활용한 영상매체를 예술작품으로 만든다는 것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도 같이 예술에서는 또 다른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1963년 3월 독일의 소도시 부버탈에서 텔레비전 13대가 동양의 한 젊은 청년에 의해 그 기능이 무시당하고 공격을 받는 전시회가 열린다. 이것은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 Electronic Television>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백남준의 첫 개인전이었다. 그는 TV의 영사막을 거꾸로 뒤집어 놓거나 관객이 발로 밟아야 기능하도록 조작하는 등 텔레비전의 본래의 기능에 반하는 반TV 예술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백남준은 왜 이렇게 TV를 공격하는 행위를 했던 것일까? 그는 대중의 의식을 교묘하게 디자인하는 일방적인 TV의 소통방식을 비판하며 텔레비전을 관객의 지배하에 두고 탈신비화시키고 해체하고자 한 것이다. 이 전시회가 비디오아트의 시초이다. 이어 Sony가 미국시장에 휴대용 카메라와 레코더를 보급함에 따라 비디오아트는 TV방송국의 독주를 가르며 가속화 되기에 이른다.

전자 입자들의 운동으로 이루어지는 동적인 비디오 이미지는 정적인 기존 예술의 재현 이미지와는 달리 시각적 비결정성을 창출하며 전혀 다른 새로운 감흥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비결정성은 지각하는 주체에게 특수한 지각 반응을 일으켜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지각 대상에 반응하게 하고, 이러한 생물학적 피드백 현상은 관객의 참여적 인식 활동을 촉진한다.

백남준은 음악에서 시작하여 퍼포먼스, 비디오 조각, 설치, 위성중계공연, 레이저 아트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관객을 작품에 참여시키고 예술과 삶의 통합을 이루고자 했다. 그리고 이 관객의 참여가 해프닝과 비디오아트를 소통의 예술, 삶의 예술로 만드는 미학적 장치이자 그의 예술성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핵심개념이다. 따라서 그의 예술은 `복합매체(Intermedia)'와 `비결정성(Indeterminacy)에 입각한 참여예술로서 `지금 여기'에서 행해지는 일종의 해프닝미학으로서 기술의 인간화된 모습을 구현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노력은 예술과 기술 그리고 인간이 좀 더 친화적으로 공존하는 삶의 예술에 다가가는 것이었다.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미술학 박사
 

예술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비디오와 텔레비전의 예술적 가능성을 상상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소통의 예술을 실현한 백남준이 후대 미디어아트 예술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뒤샹의 이데올로기를 전승하는 또 이를 능가하는 영속성을 지닐 것이다. 비록 그는 떠났지만 그의 아방가르드 정신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 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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