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서 미학적으로 사용되는 키치(kitsch)라는 용어가 있다. 키치는 19세기 말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삶의 질적 향상이 가져다준 중산층의 예술작품에 대한 소유욕이 증가하자 그들의 문화욕구를 만족시키는 그럴 듯한 그림을 비꼬는 의미로 사용되던 개념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미적 논의의 대상으로서 문화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현대에 이르면서 고급문화나 고급예술과는 별개로 대중 속에 뿌리박은 하나의 예술 장르로까지 개념이 확대되어 현대 대중문화·소비문화 시대의 흐름을 형성하는 척도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키치가 가리키는 구체적 대상은 고급미술품을 모방한 가짜 복제품이나 유사품과 같이 조악한 감각으로 만들어진 미술품과 저속한 대중적 취향의 대중문화들을 지칭한다. 이러한 키치적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팝아트 영역에 도입시켜 엘리트적인 예술개념에 등을 돌리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예술의 지위로 격상시켜 대중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예술가가 있다. 그는 ‘포스트모던 키치의 왕’으로 불리는 1955년 펜실베니아 태생의 미술가인 제프쿤스이다.
2008년 제프쿤스는 프랑스 문화의 상징인 베르사유 궁전에서 파격적인 전시회를 개최한다. 그는 일상의 오브제인 고무풍선으로 꽃과 동물을 형상화한 후 금속으로 제작하여 태양왕 루이14세의 찬란했던 권좌에 올려놓았다. 말하자면 베르사유궁전의 바로크에 쿤스의 키치미술이 합쳐진 것이다. 너무나 이질적인 이 두 요소의 결합은 그해 프랑스에서 열린 전시회 중에 가장 많은 논란과 소란을 야기하였다. 바로크양식의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 찬 베르사유궁전에 들어선 그의 키치작품은 한편으로는 시각적 불편함을 조장하기도 하였으며, 베르사유의 압도적인 장식으로 인해 그의 작품은 이목을 끌지도 못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현대미술과 고전의 만남, 절대권위주의와 일상의 만남이라는 진부한 해석과 함께 프랑스 최고의 문화재를 경박한 현대미술이 더럽혔다는 극우적 반응까지 나왔으니 어쨌거나 흥행 면에서는 성공한 전시였다.
쿤스는 풍선을 이리저리 꼬아 강아지 모양, 꽃 모양 등으로 형상화하여 세속화된 동화의 세계를 만들어 내었다. 그의 작품을 대면할 때 우리의 정서는 유년시절로 회귀하고 그에 대한 작용으로 작품 가까이 다가가면 이미 성인이 된 나와 세속적인 세상이 담겨져 있음을 보게 된다.
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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