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사고 현장에서 여자아이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 자홍이라는 소방관이 등장한다. “김자홍씨께선 오늘 예정대로 무사히 사망하셨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아직 믿기지도 않는데 저승차사 해원맥과 덕춘이 나타나서 자홍을 정의로운 망자, 귀인이라며 치켜세운다. 그리고 저승으로 가는 입구인 초군문에서 자홍을 기다리는 또 한 명의 차사가 강림한다…. 몇 해 전 1200만 관객을 동원한 화제의 영화 `신과 함께'의 한 장면이다.
황당무계할 것 같은 이야기가 제천에도 전해지고 있다. 제천시내 제천중학교에서 하소리로 가는 나지막한 비탈길을 `넋고개'라고 부른다. 이 고갯길에 `신과 함께' 영화와 같은 염라대왕도 감동시킨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조 숙종 때 제천 향교골에 대대로 내려오는 선비 집안에 정훈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정훈은 연로하신 아버지의 병세가 심히 위독하게 되었다. 효성이 지극한 정훈은 백방으로 약을 구해서 정성을 다했으나 효험이 없고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갔다.
하루는 스님을 만나서 무슨 약을 써야 하는지 알려만 주시면 목숨과 바꾸더라도 구해다 드리겠으니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간곡하게 청하였다. 스님은 그 효성에 감동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만 심히 어려운 일이요. 그것은 당신이 죽으니 그 약을 누가 아버님께 드리겠소.”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훈은 “약을 구하고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부모를 위한 일이니 후회는 하지 않지만 약을 갖다 드릴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요” 스님에게 약을 구해 아버님께 드린 후에 죽게 해 줄 수는 없느냐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스님은 한참을 염불한 후에 “나무관세음보살을 30만번을 외고 감악산 왼쪽 깊은 골 큰 바위 밑에 가면 천미라는 약이 있을 터이니 캐다 드리시오.”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정훈은 큰절을 올리고 고개를 드니 스님은 없었다. 정훈은 일러준 곳으로 가서 스님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천미'라는 약재가 나타났다. 그러나 약을 캐는 순간 훈은 의식을 잃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가 지났을까 염라대왕 앞에 선 정훈을 보고 “너는 어이해서 만지면 안 되는 약초에 손을 대었느냐. 네 수명은 아직 많이 남았지만 약초를 캔 죄로 너는 죽음을 달게 받으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닌가? 정훈은 울면서 상황을 이야기하고 아버님께 약을 드린 후에 죽게 해 달라고 울부짖으며 애원했다. 옆에 섰던 사자가 염라대왕에게 “세상이 모르는 약초는 문수보살이 정훈의 효도에 감동되어 가르쳐 준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염라대왕은 한참 생각 끝에 “네 효성에 감동되어 너를 돌려보낸다. 그러나 네가 약을 달여서 아버지께 드리면 바로 병이 낫는다. 그러나 너는 그 자리에서 죽을 것인데 소원이 없느냐?”하고 물었다. 훈이 대답하기를 “제가 죽고 아버님 병환만 나으시면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하니 염라대왕은 “과연 보기 드문 효자로다 돌아가라. 너는 오늘 사시까지 아래 고개에 닿지 않으면 주인 없는 고혼이 되리라. 빨리 가라”고 하였다. 정훈은 큰절한 뒤 현세로 되돌아와 `천미'라는 약을 들고 단숨에 마을로 달려가니 고개에 자기의 시신을 실은 상여가 쉬고 있었다. 죽었던 정훈의 영혼이 육신으로 돌아가 소리를 지르자 상여꾼이 시신을 풀어놓았다. 죽었던 정훈은 벌떡 일어나 약초를 가지고 달려가 아버지께 약초를 달여드리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때부터 이 고개를 `넋고개'라 부르고 정훈은 80세까지 살았다는 전설이다.
지금도 제천 넋고개에는 의향(義鄕)다운 아름다운 이야기로 염라대왕도 감동시킨 효도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충북 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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