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災 불구 장례식 끝나도록 관련 기관 `모르쇠'
뒤늦게 경위 설명없이 보상얘기 … 유가족 울분
“사랑하는 제 오빠의 억울한 죽음이 묻히지 않도록 제발 도와주세요. 사고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게….”
27일 오전 11시 충북도청 서문 앞에서 열린 오송 지하차도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
참석자 중 맨 앞줄 정중앙에서 마이크를 잡은 앳된 얼굴의 여성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옆에 한 남성이 뒤집힌 영정사진 액자를 보물인 양 가슴에 꼭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파르르 떨리는 어깨가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이들은 지난 15일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있던 바로 그날 청주 석판분기점 산사태로 숨진 A씨(28)의 유가족이다.
오송 참사 발생 약 3시간 전 A씨는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석판리의 한 도로에서 출근길에 무너져내린 토사에 휩쓸려 세상을 떠났다.
재난 당국이 제 할 일을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오송 참사와 같은 `인재(人災)'였다.
A씨가 숨진 곳은 경사가 심해 평소에도 산사태 위험이 우려됐던 곳이었다.
이 때문에 경사면 대부분에 사면 보강 공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날 붕괴된 곳은 보강공사 없이 방치된 상태였다. 사고 당일 도로 통제도 없었다.
지자체와 관할 기관의 안일한 대응이 맞물려 28살 청년이 출근길에 흙더미에 휩쓸려 숨지는 어처구니 없는 참극을 빚어낸 것이다.
하지만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감당하기조차 벅찬 유가족들 앞에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청주시와 충북도의 `모르쇠'식 대처였다.
A씨의 여동생인 B양(24·부산광역시 중구)은 “오빠를 청주에서 부산으로 데려와 장례를 치르는 날까지도 지자체는 아무 연락도 주지 않았다”며 “결국 가족들이 먼저 나서 청주시와 충북도에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담당 부서가 아니다', `사고 현장이 어디냐'는 식의 답변만 돌아왔다”고 울분을 토했다.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이들을 찾아온 청주시 또는 관계기관 관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B양은 “거의 일주일이 지나서야 담당 공무원에게 연락을 받았지만 그마저도 사고 경위 안내와 사고가 아닌 보상 얘기부터 했다”며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고 상황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심지어 각고의 노력 끝에 청주시로부터 전달받은 사고 관련 공문에는 A씨의 성(姓)마저도 잘못 표기된 상태였다.
청주시와 충북도의 무성의한 태도는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가슴을 또 한 번 후벼팠다.
박완희 청주시의원은 “시민이 사고로 숨졌는데도 어떤 기관도 아무런 입장 표명 없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며 “도로 관리 주체인 보은국토관리사무소는 하루 빨리 A씨의 사고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윤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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