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밤에/세실 엘마 로제/오후의 소묘'란 그림책이 있다. 꿈속에 나타난 고양이 `파타무아'를 따라 밤의 도시를 여행하는 판타지 그림책이다. 꿈과 판타지는 일련의 이어짐의 끈이 있다. 억눌려 있던 심리가 잠자는 동안 나타나는 현상이 꿈이라면 그 마음을 거침없이 펼 수 있는 장르가 판타지이기에 그렇다. 아이들이 판타지를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고 즐길 기회를 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양이 파타무아를 따라나선 소녀는 현실에선 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한다. 분홍색 치마를 두른 생쥐, 커다랗고 푸른 개 그리고 장화 신은 여우와 비둘기를 타고 도시여행을 한다. 그들이 다다른 곳은 빗장으로 재갈이 물려 있는 커다란 철문 앞이다. 동물원이다. `동물원 안 우리마다 달리거나 날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억눌려 있다면, 이 시커먼 철문 뒤에는 수없이 많은 불만이 쌓여 있겠지.-본문 중-' 예상대로 소녀와 동물 친구들은 열쇠로 자물쇠를 열어 갇혀 있던 동물들을 풀어준다.
그제야 소녀는 깨닫는다. 어떤 일을 하는지를. 해방작전이다! 삶의 기간 중 어두운 밤의 터널을 걷게 되는 시간이 있다. 성격적인 혹은 경제적이거나 아니면 주변 상황 등이 연유되어 인생의 걸림돌이 되면 지독한 어둠에 갇히게 된다. 마음에 철문 닫고 빗장마저 걸게 되는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스스로 만든 우리에 갇히는 거다. 굳게 닫힌 문일지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구석엔가 철문에 숨겨 놓은, 분명 무언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을 볼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들여다봐야 하는 때다.
두 눈을 감고 나를 잡아 가둔 철문을 바라보자. 작가의 말처럼 자물쇠에서 커다란 한숨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는 것이 보일 것이고 한숨에 딸려 나오는 내 생각이 보일 것이다. 그러면 내가 살아가는 일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실마리가 되어 문을 여는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쉽지 않다. 보편의 틀에 얽매어 있는 난 특히 어렵다.
나보다 어린 띠동갑 친구가 있다. 재기 발랄한 친구다. 아무리 많은 시도를 해 봐도 안 되는 경우라 “백번을 해 봐라! 되는지.”란 말로 대꾸했더니 그 친구 대뜸 “그럼 백 한 번 하면 되는겨?”라 응수한다. 순식간에 긍정적인 분위기로 만들었다. 지금 그 친구의 형편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그녀와 주변인들을 참으로 유쾌하게 한다.
그녀는 꿈을 꾸고 있고 꿈을 위해 나아가고 있기에 철문 뒤에 있는, 억눌린 욕망이 숨겨 놓은 불만을 대면할 수 있는 것이다. 억눌린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문을 열고 끄집어내면 그것은 힘으로 탈바꿈하여 꿈을 향해 나아가는 추진력이 된다.
무엇인가에 발목을 잡히고, 앞길에 재갈이 채워져 있는 세상의 어두운 밤을 걷고 있다면, 눈을 지그시 감고 나만의 파타무아를 따라 판타지 세계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자. 나를 찾는 해방의 시간이 될지 모르니!
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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