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딜레탕트
정원의 딜레탕트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4.05.1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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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5월 첫 주간에 한 꽃박람회에 다녀왔다.

호수공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한 곳, 초록의 메타세콰이아 숲 아래 황지해 작가가 설계한 정원이 있었다.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라는 이름의 이 정원은 바람꽃과 바람의 드로잉을 목표로 식재했다. 호숫가의 바람이 바람꽃의 수분을 도와 매년 다양한 바람꽃이 피어나도록 설계된 이 정원에는 시계바람꽃, 촛대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남바람꽃, 세바람꽃, 꿩의바람꽃, 나도바람꽃, 너도바람꽃, 숲바람꽃, 회리바람꽃, 변산바람꽃, 만주바람꽃, 풍도바람꽃, 들바람꽃 등 14종의 우리 바람꽃이 심겼다.

바람꽃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식물로 약 200여종이 전 세계에 흩어져 분포하고 있다.

바람꽃은 아네모네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꽃집이나 화훼시장에서 파는 아네모네는 온난한 기후대에서 자라던 종을 개량한 종으로 노지 월동은 어렵다. 그러나 황지해 작가 정원에 쓴 바람꽃은 우리 땅에 자생하고 있는 종들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쌀쌀한 기온 속에서도 기특하게 꽃을 피운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피고 바람이 더 따듯해지면 지는, 바람을 따라 피고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작가의 정원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30m 길이의 긴 검은 벤치 두 개다. 수직으로 뻗은 메타세콰이아 숲 아래 검은 두 선분이 길게 뻗어 만들어 내는 경관은 압권이었다. 이 벤치는 직육면체의 긴 검은 나무판 모양인데 약 2062㎏의 탄소를 저장하는 탄소 큐브로,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바람꽃이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는 그 벤치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박람회에 출품할 때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치장하고 덧대고 붙이고 싶은 마음일 텐데, 황지해 작가는 외려 빼고 줄이고 감추었다. 그녀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단순함과 소박함 덕분에 흑단 벤치도, 바람꽃도, 원래 그곳에 있던 메타세콰이아도, 호수공원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심지어 잠시 앉았다 가는 나까지도 말이다.

정원에 관하여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문외한이면서 한 발 담고 있는 기분, 그야말로 `딜레탕트(dilettante)' 같은 사람이 아닐까?

딜레탕트란 좋게 말해 예술애호가, 박하게 표현하면 그 분야에 관심은 많지만 많이 알지는 못하는 사람, 그 분야를 깊이 탐구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전에 `그는 작가라기보다는 딜레탕트의 태도를 가지고 글을 쓴다.' 거나 `그때까지 철수의 연구는 아직 딜레탕트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등의 예문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 독창적 관점도 없이 그저 시대의 경향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딜레탕트이니, 그 의미는 나쁜 편에 더 가깝다.

딜레탕트는 이탈리아어 딜레타레(dilettare), 기쁘게 하다, 즐기다에 그 어원이 있다.

그러니 생각해 보면 딜레탕트라 하더라도 그 분야를 즐기고 그 분야로 인해 기쁘고 또 한편 내가 그 분야에 기쁨이 되기도 한다면 독창적 관점이 좀 없으면 어떤가? 세상의 여러 많은 분야 중에서 정원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이미 내 마음과 생각이 정원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비록 작가는 될 수 없지만, 작가의 정신을 함께 느끼며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응원을 보내는 것, 그것이 정원의 딜레탕트인 내가 할 일이다.

스승의 날이 지났다. 학교는 선생님들이 의미를 두고 자신의 의식을 다해 가꿔가는 정원이다. 사랑하는 학생들이 있고, 좋아하는 교과와 동료가 있는 곳, 그곳의 주인공들이 그곳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가꿔 가도록 우리 딜레탕트들은 더 응원하고 더 환호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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