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역한 친구 중에 시골에서 꼿꼿하게 농사를 지으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사는 친구가 있다면 그 사람은 여간 행운이 아니다. 언제든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그 친구는 늘 그 자리에 있다. 대단한 친구 복이 아닐 수 없다. 당(唐)의 시인 맹호연(孟浩然)에게도 시골 붙박이 친구가 있었던 모양이다.
친구 집에 들러(過故人莊)
故人具鷄黍(고인구계서) 친구가 닭 잡고 기장밥 지어 놓고
邀我至田家(요아지전가) 나를 불러 시골집으로 오라고 하네
綠樹村邊合(녹수촌변합) 푸른 나무들이 마을 가장자리에 모여 있고
靑山郭外斜(청산곽외사) 푸른 산은 성곽 밖으로 비스듬히 뻗어 있네
開軒面場圃(개헌면장포) 창문 열어 채마밭 바라보고
把酒話桑麻(파주화상마) 술을 손에 들고 농사일 이야기하네
待到重陽日(대도중양일) 중양절 오기를 기다려
還來就菊花(환래취국화) 다시 와 국화 밭에 가보세나
시의 전개는 극도로 순차적이다. 시인에게는 밭 곁에 지은 농가에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음식을 후하게 차려 놓고 시인을 그곳에 초대했다. 그래서 시인은 어떤 마을을 지나 그 집에 당도한다. 그리고는 밭을 바라보며 차려 놓은 음식을 안주 삼아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뽕과 마 농사 이야기를 나눈다. 마지막으로 가을 중양절에 다시 와서 국화 밭에 가보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멀리서 농사지으며 사는 친구 집을 다녀온 줄거리지만, 시에는 많은 암시와 은유가 내포되어 있다.
닭을 잡고 기장 밥을 지었다는 것은 친구의 소박한 삶과 사람을 대하는 정성스런 태도를 잘 말해 준다. 마을 가장자리에 모여 있는 푸른 나무들과 성곽 밖으로 비스듬히 뻗은 푸른 산들은 친구 집을 찾는 시인의 설렘을 대변한다.
차려 놓은 음식과 술을 함께 즐기며 나눈 농사 이야기는 시인과 친구 둘 다 탈속한 경지에 도달했음을 말해 준다. 가을에 다시 와 국화 밭에 가기로 한 약속 또한 그들이 세속에서 벗어나 은자(隱者)로서의 삶을 살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지만, 기실 이 시는 매우 관념적이다. 시인의 탁월한 묘사 기법이 시의 맛을 잘 살리고 있다.
사람들의 삶의 행태는 겉으로 드러난 것들을 보면 다 엇비슷하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술을 쾌락과 방탕으로 마시는 경우도 있고 탈속의 경지로 나가기 위해 마시는 경우도 있다. 농사를 생계를 위해 짓는 경우도 있지만, 세속적 삶으로부터 떨어지는 수단으로 짓는 경우도 있다.
사람은 늘 탈속적으로 살 수는 없겠지만, 가끔은 탈속의 관념에 빠져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삶의 멋 아니겠는가?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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