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연주
즉흥연주
  •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 승인 2024.05.2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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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박창호 전 충북예술고 교장
 

지금 배우고 있는 과목 중에 `기악 앙상블'과 `보컬 앙상블'이라는 과목이 있다. 앙상블(ensemble)은 프랑스어로 `함께, 같이'란 의미이다. 화합과 조화를 뜻한다. 기악 앙상블은 여러 악기가 함께 모여서 서로 화음을 만들어 연주하는 법을 배우는 과목이고 보컬 앙상블은 2명으로 시작해서 익숙해지면 3명, 4명으로 조합을 늘려가면서 함께 화음을 넣어 노래하는 법을 배우는 과목이다.

지난 해에는 `기악 앙상블' 과목을 수강하였으나 올해는 보컬 전공자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던 데다가 더 큰 이유는 합창곡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화성 선율을 익히고 공부할 목적으로 보컬 앙상블 과목을 신청했다.

누구랑 함께 합을 맞출까 고민하다가 60대에 새롭게 음반을 내면서 열정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학우에게 내가 작곡한 곡 `흔들리며 피는 꽃'을 함께 불러보자고 제안했더니 고맙게도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학우라서 일상을 바쁘게 쪼개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매일 아침 7시에 등교하여 수업 시작 전까지 학교 연습실에서 꾸준히 노래 연습을 하고 있는 맹렬파 학우이다.

보컬 앙상블 시간에 연습곡을 발표하고 나면 교수님께서는 어떤 부분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피드백을 주신다. 팀마다 선곡이 다 다르니 교수님께서 주시는 피드백의 내용이 모두 다르지만 듣다 보면 통일된 맥락이 있다. 그것은 어떻게 표현을 변화시켜 가면서 감동을 극대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직접 건반을 연주하시거나 유튜브에서 그 맥락에 맞는 영상을 찾아 보여주시면서 설명을 해 주시니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라고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런데 엊그제 수업 시간에는 한 팀이 허밍을 통해 곡의 맛을 살리는 기교를 선보였다. 예외 없이 교수님께서는 유사한 영상을 보여주시면서 그런 곡의 경우 어떻게 음악의 맛을 살려낼 수 있을지 설명을 해 주셨다.

그때 맹렬파 학우가 어떻게 하면 저렇게 즉흥연주를 잘할 수 있는지 즉흥 연주의 비결이 천재성인지 어떤 것인지, 그 비결을 알려달라며 교수님께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설명을 해 주셨다. “즉흥연주는 없던 것을 순간적으로 창조하는 것이 아니예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없이 많은 패턴 중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것 하나를 꺼내어 연주하는 것, 그게 즉흥연주죠.”

즉 천재성을 바탕으로 순간적으로 창조해 내는 연주가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패턴 중의 하나를 선택하고 조합하면서 풀어내는 과정이라는 것, 따라서 평소에 수없이 많은 연습을 통해서 자신의 패턴을 계속 확장해 놓아야만 즉흥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배우기는 음악을 배우고 있는데, 수업시간에 익히는 것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음악에 대한 강의를 넘어 그대로 인생 강의였다.

우리들의 삶도 이와 뭐가 다르겠는가? 수없이 많은 삶의 경험치 중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최고의 경험치 하나를 꺼내어 풀어낼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내 삶의 즉흥연주 실력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연주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 매 순간 내가 선택하는 내 삶의 조합은 어떤 화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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