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Epicurus)는 기원전 341년 도시국가 아테네가 지배하던 사모스 섬에서 태었났다.
그는 만족한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공식적으로 어떤 학교도 다니지 않았고, 항상 `나의 스승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고 당시 도시 국가는 심각한 혼돈 상태에 빠졌다.
자신의 이상을 정치에서 실현하겠다는 고결한 이상은 사라지고 생존을 위한 권력다툼만이 난무했다.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도시 국가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 수양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하는 풍조가 유행했고 에피쿠로스도 이에 적극 공감했다.
그는 스토아학파가 주장한 결정론적 세계관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 의지를 인정함으로써 쾌락주의의 토대를 만들었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을 `쾌락의 증가와 고통의 회피'로 간결하게 정의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았다. 쾌락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고 쾌락에 따라 인간 삶이 변화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가 주장한 쾌락은 현대사회의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쾌락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는 적극적인 쾌락의 추구보다는 고통의 제거를 강조했다. 최고의 쾌락은 모든 고통이 제거될 때 달성된다고 보았다. 고통의 부재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임을 강조하는 소극적 쾌락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적극적인 쾌락의 추구가 아니라 욕심을 줄이며 사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더 적절한 방법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 불렀다.
우리 신체에 어떤 고통도 없고,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불안과 근심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허황된 욕심이 없어 마음에 불안과 몸에 고통이 사라진다. 외부의 간섭이 없고 고통이 따르지 않는 순수한 쾌락을 뜻한다. 적극적인 욕망의 추구가 아니라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 해방을 중시한 것이다.
인간의 유한성으로 인한 최고의 공포는 죽음이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타락시아에 도달할 수 없다.
그는 신은 가장 행복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결핍이나 아쉬움이 없어 인간의 일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신은 우리에게 벌을 주지 않으니 신의 심판 공포에서 벗어 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죽으면 감각 능력을 상실해 고통을 느낄 수 없고,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을 만날 수 없으니 우리는 결코 죽음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신의 벌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에피쿠로스는 적극적인 욕망의 추구와 소비가 아니라, 줄이고 절제하는 도덕적 삶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고자 했다.
욕망과 소비가 넘쳐나고 물질과 자원이 고갈되는 현대사회에 에피쿠로스가 주장하는 행복론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소중한 깨우침을 준다. 행복은 욕망을 줄이고 필요한 쾌락만을 추구하는 절제된 삶에서 피어난다. 참 행복을 위해서는 절제된 쾌락이 필요하다.
행복을 여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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