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존지해(莫存知解)
막존지해(莫存知解)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4.06.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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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불교 중에서도 깨달음에 이르는 첩경을 강조하는 선가(禪家)에는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라는 가르침이 있다. “이 문에 들어서면 온갖 지식에 의지함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저기서 보고 들어서 알게 된 지식으로는 결코 실존적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에 알고 있던 온갖 지식을 내려놓고 마음을 0점 조정해 무아를 깨닫고, 갓난아기 같은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이해하면 된다.

귀동냥한 지식을 입에 올리는 것은 배가 고프면 흙이 묻은 빵 한 조각이라도 먹는 것이 요긴한데 그림의 떡을 보면서 저 빵의 재료가 어떻고 영양가가 어떠니 등등 빵에 대한 온갖 지식을 나열하며 점점 배고픔만 더 키우며 힘을 빼는 짓과 다르지 않다.

이 같은 맥락에서 불교는 온갖 죽은 지식 뭉치인 업식을 녹임으로써 크게 죽은 뒤, 나 없음의 무아를 깨닫고 크게 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독교는 제 안의 온갖 주견을 텅 비워냄으로써, 갓난아기 같은 순수 의식의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크게 죽어 크게 살아나는 첩경을 밝힌, “道休去歇去(도휴거헐거) 一念萬年去(일념만년거) 寒灰枯木去(한회고목거) 一條白練去(일조백련거) 冷湫秋月去(냉추추월거) 古廟香爐去(고묘향로거) 如流川去(역여유천거)”라는 석상칠거(石霜七去) 법문이 있어 소개한다.

석상칠거 법문이 수행의 첫 단추로 강조한 것은 道休去歇去(도휴거헐거)로, 도란 쉬고 또 쉬어 가는 것이란 의미다. 불필요하고 어리석은 습관적인 말과 행동을 멈추고 그치는 것이 모든 수행의 시작이라는 의미다. 살생과 도둑질 및 거짓말을 하지 않는 등의 계율을 지키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다. 학생이 공부를 못하면, 공부를 잘 할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일단 공부에 방해되는 일련의 행동을 멈추고 하지 않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一念萬年去(일념만년거)는 한 생각이 만년 가게 하는 것이란 의미로, 특히 생각과 말과 행동 중에서도 생각을 쉬고 또 쉬며 신중하게 하라는 의미의 가르침이다. 寒灰枯木去(한회고목거)는 찬 재와 마른 나무가 되는 것이란 의미로, 무심한 삼매에 들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一條白練去(일조백련거)는 한 줄기 실을 이어가듯 하라는 것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간단없는 수행을 이어가라는 말로 이해하면 되고, 冷湫秋月去(냉추추월거)는 차가운 물 속의 가을 달처럼 수행하라는 말로, 편안하고 고요한 무심의 상태에서 안주함 없이 고요하면서도 또렷또렷 깨어있는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古廟香爐去(고묘향로거)는 인적이 드문 옛 사당의 향로처럼 살아가라는 말로, 언제나 과도한 욕심으로 분주하고 바쁜 일상이 아니라, 꼭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으로 이해하면 된다. 亦如流川去(역여유천거)는 유유자적 흐르는 시냇물처럼 살아가라는 의미로, 나 없음의 무아를 깨닫고 심령이 가난 한 자로 거듭난 후에는, 자신만을 위해 편안하게 고여있는 웅덩이 물이 아니라, 그 어느 곳에도 집착함 없는 시냇물처럼 쉼 없이 흐르는 가운데,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되 함이 없는 무위자연의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현실도피의 일 없는 경계에도 머묾 없이, 일상과 수행이 둘이 아닌 가운데, 중생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대자대비의 삶이여! 낮은 곳에 임하며, 이웃을 제 몸처럼 보살피는 큰 사랑의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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