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색은 녹색이다. 옅은 녹색이 아니라 짙은 녹색이다.
참나리 능소화 배롱나무꽃 같은 여름 꽃들이 화려한 자태와 빛깔을 아무리 뽐내 보아도 이미 성숙할대로 성숙한 나뭇잎과 풀잎의 농록(濃)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다.
녹색의 바다인 한여름에는 시간도 느리게 가고 농부의 발걸음도 느리고 꽃의 피고 짐도 느리다.
당(唐)의 시인 이백(李白)은 이러한 여름의 느낌을 특유의 감각으로 잡아내었다.
여름의 노래(子夜吳歌-夏)
鏡湖三百里(경호삼백리) 경호 호수 너비가 삼백리나 되는데
(함담발하화) 연봉오리에는 연꽃이 피어나네
五月西施採(오월서시채) 오월에 서시가 연꽃을 캐는데
人看溢若耶(인간일약야) 사람들이 약야에 몰려 길이 다 막혔네
回舟不待月(회주부대월) 돌아가는 배는 달이 채 뜨지도 않았는데
歸去越王家(귀거월왕가) 월나라 왕궁으로 데려가 버렸네
여름꽃 중에 인상적인 것이 연꽃이다. 물 위에 떠 있어서 시원하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이 연꽃이 여름이 일찍 오는 중국의 오(吳)나라 땅에 있는 삼백리 넓은 호수 경호(鏡湖)에 가득 피었으니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이 독보적 여름 풍광에 등장한 아이돌이 있었으니 이 지역 출신 궁녀인 천하절색 서시(西施)이다.
그녀가 연밥을 따기 위해 수행원들을 이끌고 호수에 나타나자, 이를 구경하기 위해 인근 사람들이 몰려들어 호수로 이어진 물인 약야계(若耶溪)가 넘쳐 날 지경이었다. 절경에 미인까지 더했으니 이만한 구경거리가 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시간이다. 평소에는 느리게만 가던 여름 해가 때가 때인지라 후딱 지나가 버렸다.
아직 달이 뜨지도 않았는데 수행원들이 배를 돌려 그녀를 태우고 월궁(越宮)으로 돌아가 버렸다.
구경꾼들에게는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연꽃과 물로 대표되는 여름 풍광에 서시라는 역사적 인물을 얹어 생동감 나는 여름 느낌을 만들어 낸 시인의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름 생활은 힘들고 지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휴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가 여름이다.
휴식에 나서면 여름이 주는 선물들을 만날 것이다. 짙은 녹음이며 시원한 물, 농염한 여름꽃들을 열린 마음으로 만나다 보면 길기만 하던 여름 해가 어느덧 서산을 넘고 있을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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