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연배가 있으신 독자라면 어렸을 적 쥐불놀이 한 번쯤 해 보셨으리라 생각한다. 대보름날을 앞두면 벌써 몇 주 전부터 깡통을 돌릴 생각에 설레어서 동네 집집마다 담장 구석에 모아놓은 병과 깡통을 뒤적거렸다. 쥐불놀이 통을 만들 깨끗한 분유 깡통을 각자 하나씩 줍고 나면, 다시 쓸만한 짱돌과 떨어진 녹슨 못을 주워 와서 옹기종기 둘러앉아 깡통에 구멍을 뚫기 시작한다. 바닥 가장자리부터 촘촘하게 구멍을 뚫어 밑바닥이 꽉 차면 이제 옆 벽도 뚫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는 힘 조절을 잘하지 못하면 움푹 찌그러지거나, 옆 구멍과 이어져 큰 구멍이 나고 만다. 약간 찌그러지더라도 아가리에 줄까지 잘 꿰었다면 이제는 또 산등성이를 누비며 솔방울과 잔가지 등을 주워 숨이 잘 통하고 오래 타도록 연료를 채워놓는다. 이윽고 보름밤이 되어 달집 불에 얹어 놓고 불을 댕겨 힘껏 돌리면 불이 둥근 원을 그리며 부루룽~ 부루룽~ 소리를 냈다.
세종시 등곡리에는 마을 제사의 한 과정으로 `낙화 내리기'를 하는 풍습이 있다. 정월보름 불꽃으로 삿된 것을 정화하며 마을의 안녕을 기하는 이 풍습에는 `낙화봉'이라는 도구가 사용된다. 올해 이 등곡리 동제에서 사용하는 낙화봉의 표준 제작안을 마련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전 조사를 갔던 지난 겨울, 어릴 적 달집과 비슷한 나뭇더미가 활활 타고 있는 논두렁에 몇 개인가 쥐불놀이 통이 놓여 있었다.
어르신들은 당신들께서 돌리지는 못해도 만든 것을 기억하니 만들었겠지만, 그걸 돌릴 아이들에게는 이미 낯선 물건이다. 아마도 이러한 놀이를 경험한 이가 전부 사라지고 나면 잠깐동안은 그것이 구전되거나 하겠지만 몇 세대가 지난 후엔 만드는 방법은커녕 그런 놀이도구가 있었는지조차도 모르게 될 것이다. 혹은 우연찮게 남아있는 기록이나 물건을 보게 되어도 용도를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무형의 유산은 지금까지는 입에서 입으로 근근히 전해져왔지만, 쥐불놀이처럼 어느 순간 잊혀져 버릴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남아있는 무형의 유산을 기록하고, 그 제작 표준안을 만드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등곡리에서 낙화봉을 제작하시는 어르신들만 해도 이미 구전된 이야기와 본인의 어릴 적 기억에 기대어 만들다보니, 각자의 방식도 다르고, 모양도 달라진다. 또한 정확하지 않은 방식의 구전으로 점점 변형된 방식은 원래의 의미와 기능을 상실하기도 하고, 목적을 잃은 방식은 점점 더 극단적인 생략, 또는 의미 없는 군더더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시간의 흐름과 환경에 의한 자연스러운 변화는 그 역시 유산의 역사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잘못된 지식으로 전승됨으로써 그 전형성이 흐트러지는 것은 분명 대책을 마련하고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무형유산처럼 반복 전승되는 동안 끊임없이 주위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변화가 잦아지는 경우 결국 그 주요 부분이나 형식만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세부적인 순서나 사용되는 도구의 제작 방법 같은 부수적인 것들은 전승내용에서 변형되거나 누락되기 쉽다. 그렇기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표준적인 설명서가 있으면 좋다. 도구의 제작 방법에 대해 재료, 크기 등을 수치로 설정하고 기록해 두면, 이후에 만드는 사람이나 장소, 환경이 바뀌어도 변형되거나 누락되지 않은 제작 원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무형유산 자체의 의미와 정신이 온전히 전승되는 데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날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길래 혼자서 쥐불놀이 통에 숯과 나뭇가지들을 채워넣고 붕붕 돌리니, 몇몇 나이든 아빠들이 동참해 통을 돌려 보이며 아이들에게 쥐불놀이를 가르쳐 주었다. 쥐불놀이 깡통 제작 표준안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옛 이야기가 담긴 소중한 것들을 변함없이 이어갈 수 있는 노력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나야 할 것 같다.
충북의 문화유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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