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하던 나는 매 학기 말이 되면 새로운 방을 배정받아 그간 생활하던 짐들을 새로 배정받은 방으로 옮겨놓고 방학 생활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학생 신분이라 가진 것이라고는 책과 옷가지들뿐이어서 가진 것들을 쉽게 옮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책도 많아지고 옷가지들도 불어나니 졸업할 무렵에는 버릴 것이 많은 데도 이것은 이래서 못 버리고 저것은 저래서 못 버리다 보니 결국 끌고 다니는 것이 많아졌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선 현장으로 나갈 때는 그곳의 사정을 잘 모르니 별도리 없이 가진 것들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다 버리고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 현장으로 떠나는데도 한 선배가 말하기를 출가자는 가방 하나만 들고 다니는 것이라는 충고를 해 주었습니다. 그 뒤부터는 이직 명을 받을 때마다 가방 하나만 들고 다니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인 것처럼 느껴져 조금이라도 짐이 많아지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해 신혼살림을 시작할 때도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겨우 9평 집을 얻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집이 좁아 무슨 물건들을 많이 사서 들여놓을 수도 없어 생활하면서 불편이 따랐지만 좋은 점은 집이 좁으니 청소할 곳이 적어 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집주인이 방을 비워달라고 하여 다른 집을 얻어 이사 갈 때도 이삿짐이 적어 용달차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이삿짐을 다 싣고도 여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쓰지 않은 물건들이 있어 이것저것 버리다 보면 그것들이 꽤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세대는 이사를 자주 하는 편이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는 한곳에 정착하면 평생을 그곳에서 사시는 삶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사는 가정에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야만 가는 것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요즘은 자녀 교육을 위해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하거나 직장 때문에 직장 옆으로, 나이 들어서는 병원 옆으로, 사는 집이 오래돼서 새로운 집을 장만하여 이사하는 등 일생을 살면서 적게는 서너 번 많게는 그 이상 이사를 하게 됩니다.
이사를 하려면 그래도 더 나은 집을 장만하거나 더 너른 집을 장만하여 갑니다. 그러니 그동안 쓰던 가구들이 새로운 집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용하던 물건들을 다 버리고 새로 장만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는 이렇듯 이사를 통해 정이 든 물건들과 헤어지는 연습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정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내가 마음을 주고 살다가 아직 마음을 준 것으로부터 마음을 거두어 오지 못한 것입니다. 마음을 거두어 와야 다른 것에 또다시 마음을 줄 수가 있는 것인데 처음 마음을 준 곳에 묶여 있으니 다른 것이 아무리 좋다 한들 마음에 들어옵니까? 못 들어오지요.
이렇게 본다면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었다가 다시 거두어 오는 연습을 이사가 시켜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고통스러운 것 중 하나가 곧 마음을 주었다가 거두어 오지 못해 생기는 것들이 많습니다.
내 자식 내 물건 내 집 등등. 이 모든 것이 마음을 앗아가 꽉 붙잡고 있으니 어디에 묶인 듯 갇힌 듯 답답하고 괴로우며 벗어나고픈 마음이 잠시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저 여행하듯이 자연스럽게 지나칠 수만 있다면 세상은 정말 자유롭고 아름다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할 만한 곳입니다.
늦가을 정든 곳과 이별하려는 아쉬운 마음을 접고 진정 자유를 마음껏 누려보고자 이사 가면서 쓰던 물건 정리하듯 어디엔가 붙잡혀 돌아오지 않는 마음을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그 자리로 되돌려 봅니다. 지금부터라도 어디에 매이지도 말고 머물지도 말며 마음을 마음대로 사용하여 참 자유인이 되는 삶을 꿈꾸며….
사유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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