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매년 노벨문학상은 확인해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올해 여러 문학 관련 관계자는 찬쉐나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를 유력 후보로 점쳤고, 나 자신도 아마 찬쉐 혹은 마거릿 애트우드 쪽이 더 가능성 있지 않겠냐 하고 생각했다.
이번엔 비영어권 여성 작가가 상을 탈 거라는 예측이 우세했으니 찬쉐가 되지 않겠나 하고 생각했다. 번역이라는 큰 벽이 존재하는 이상, 사용자가 많은 중국과 인도, 이미 두 번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일본의 벽을 넘긴 당분간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운동하러 가다가 속보로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전해졌을 때 진짜인가 싶더라. 가짜뉴스인가 의심했다. 운동 끝나고 집에 와서 찬찬히 살펴보니 진짜 맞더라.
학교서도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의 대출행렬이 이어졌다.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겠다 싶어 어른 서가에 따로 별치해 두었는데 대출해달라며, 읽고 싶다는 요청이 이어졌다.
소재가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잔인하거나, 성에 대한 묘사가 약간 들어가 있어 너희는 커서 읽으라고 다독이고, 다른 책을 권해보아도 자기는 이미 다 컸고 다 안다는 초,중학생과 입씨름하느라 힘들다. 다른 외국 작가가 상을 받았을 때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노벨문학상 받은 작품을 원서로 읽을 수 있으니 애들도 호기심이 동하나 보다.
작가의 책을 다시 읽고 있는데, 소설 외에도 동화와 시집도 있더라. 동화는 다음 구입 때 구입할 예정이고, 시집을 읽어보았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한강, 문학과지성사)를 보고 시도 쓰셨구나 싶더라.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이 당선되기 전 1993년에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외 네 편의 시가 실렸다. 이 시집은 그 시를 포함, 20년 동안의 시를 묶어 펴낸 시집이다.
소설과 달리 시집은 작가 개인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있다. 시 괜찮아는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시기에 아이에게 괜찮다고 도닥이면서 자기 자신도 괜찮다고 도닥임을 받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아이의 손을 잡으며 느낀 감동을 시 그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아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은 시도 있다.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는 읽다 보면 일상적으로 밥을 먹으며 지내는 평범한 시간을 쓸쓸히 묘사했다 싶다. 거울 저편의 겨울 은(지구 반대편, 남미 아르헨티나지 싶다.) 거기서 본 사람들, 갈 때까지의 여정 등을 시로 썼다. 이천오년 오월삼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는 작품 구상 하면서 적은 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소식을 찾아보니 지난달에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시 두 편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년 상반기에 신작 하나 낼 거라고 하던데 과연 어떤 작품일지 기대된다. 작가는 2019년에 노르웨이의 미래도서관 프로젝트에 참여해 90년 후인 2114년에 출간될 책 사랑하는 아들에게도 읽어보고 싶은데, 이건 무리려나.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다시 펼쳐보려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일단 동화 눈물상자, 천둥 꼬마선녀 번개 꼬마선녀를 기다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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