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폭염이다. 이 시기 한반도의 낮은 크게는 둘 중 하나다. 폭염경보 아니면 폭염주의보. 밤 또한 열대야 아니면 그렇지 않은 밤으로 나뉜다. 그야말로 삼복더위다. 흔히들 여름철 무더운 때를 삼복더위라고 하는데 여기서 삼복(三伏)은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말한다. 여기에 날을 붙여 복날이라 부른다. 초복은 하루의 해가 가장 길다는 절기(節氣)인 하지(夏至)이후 세 번째 경일(庚日)이 되는 날을 말하고 네 번째 경일(庚日)이 되는 날은 중복(中伏)이 된다. 말복은 입추(立秋)로부터 첫 번째 돌아오는 경일(庚日)이다. 복날은 모두 경일이기에 삼경일(三庚日)이라고도 불렀다. 경일(庚日)은 만세력상의 날짜이다. 경일(庚日)의 경(庚)은 십간(十干)인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중 경(庚)을 의미한다. 십간(十干) 상으로 같은 날이 돌아오는 주기는 열흘이다. 그러므로 초복과 중복은 정확히 열흘 차이가 나지만 중복과 말복의 간격은 당해 입추에 따라 달라진다. 경(庚)은 오행으로는 금(金)이고 음양(陰陽) 중 양(陽)이다. 또 계절적으로는 가을이 되는데 복날은 가을의 기운인 금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오다 더위를 이기지 못해 복종하고 엎드렸다는 의미이다. 복날의 복(伏)자는 엎드릴 복자다. 삼복이라 함은 한 번도 아닌 세 번을 누른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번여름 금과 화의 대결은 현재스코어 이전이승(二戰二勝)으로 화기(火氣)의 압승이다. 올 여름 파리에서나 한반도에서 이래저래 여러모로 사투(死鬪)가 벌어지는 중이다.
살아있다면 지구가 멈추지 않는다면 매해 어김없이 돌아오고 마주해야하는 여름 그리고 더위. 우리는 이것을 단지 이겨내고 견대내야만 하는 존재로 바라봐야만 하는가. 요즘처럼 냉방기도 없던 그 옛날 선조들은 여름과 더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보냈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다. 그중 다산 정약용 시문집(詩文集) 정다산전서(丁茶山全書)에 실린 글귀인 소서팔사(消暑八事)를 전한다. 더위를 없애는 여덟 가지 일이라는 뜻으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송단호시(松壇弧矢) 솔밭에서 활쏘기
괴음추천(槐陰鞦韆)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
허각투호(虛閣投壺) 넓은 정각에서 투호하기
청점혁기(淸簟奕棊)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서지상하(西池賞荷)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동림청선(東林聽蟬) 숲 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우일사운(雨日射韻) 비오는 날 한시 짓기
월야탁족(月夜濯足) 달밤에 개울가에서 발 씻기
다산의 여름나기는 정신수양과 육체단련이었다. 그리고 풍류(風流)였다. 한마디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가르침. 피서(避暑)를 택함 보다는 낙서(樂暑)를 통하여 망서(忘暑) 하겠다는 굳을 결의가 보인다. 끝이 언제일지도 알 수 없었던 유배 기간 조선 참선비(眞儒) 다산은 선비답게 여름을 보냈던 것이다. 우리는 시련과 고초 그로인한 인내의 시간을 이야기할 때 춥고 배고픈 고난은 말해도 덥고 배고픈 고생은 말하지 않는다.
포난사음욕 (飽煖思淫慾) 기한발도심 (飢寒發道心) 배부르고 따뜻하면 음욕이 생겨나고 배고프고 추우면 도심(道心)이 일어난다는 명심보감의 글귀가 그렇고 불시일번 한철골 (不是一番 寒徹骨) 쟁득매화 박비향 (爭得梅花 撲鼻香) 뼈를 깎는 추위를 만나지 않았던들 매화가 어찌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으랴는 황벽선사의 글귀가 그렇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기간은 18년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에게는 그 시간들이 모든 계절 구분 없이 고난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 시절의 더위와 추위가 고난의 시간인 동시에 성숙(成熟)과 숙성(熟成)의 시간이었다고 그가 저술한 500여권이 책들은 말하고 있다.
여름이 말했다. `나는 다만 나의 임무에 충실할 뿐이다.'
시간의 문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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