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 … 바람
개소 … 바람
  • 안승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산업본부장
  • 승인 2024.08.2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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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산업본부장
안승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산업본부장
 

바람이 없다. 모든 게 멈추었다. 화면이 정지된 듯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툭 소리가 귀전을 두드리고 고개를 돌렸다.

미동도 없던 바람, 소리마저 멈춘 시간 정적을 깨는 감이다. 다 자란 감을 여전히 떨어뜨리고 있는 나무다. 하필 스테인리스세숫대야에 떨어져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람이 없는데 떨어지는 감은 뭔가?

가끔도 아니고 낙엽 떨어지듯 떨어지는 감이다. 달린 감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면 감이 익을 때까지 달려있는 감은 없을 듯하다. 몇 개나 달렸을까 세어보려는데 숫자 안에 있던 감이 또 하나, 또 하나 연신 떨어진다.

바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닌 듯하다. 먼발치 하늘위에 구름이 흐른다. 너무나 느린 흐름, 바람의 미는 힘이 아니라 구름이 이어 생기는 느낌이다. 그 위 높은 곳에서 만들어진 구름은 아예 멎어있다.

그나마 회색빛을 띠고 있는 아랫단의 구름 몇 무더기가 움직임을 감지하게 허락한다. 그나마 물끄러미 오랜 시간 쳐다보아야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구름아래 감나무아래 그늘이라지만, 커다란 찜통 안에 들어있는 고깃덩어리가 된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며 습이 피부에 닿고, 육수는 삐져나오고 조금 더 있다가는 잘 삶아진 수육이 될 듯하다. 이럴 때 잠깐만이라도 바람이 불어준다면, 생각하는 순간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금세 숨이 멎을 정도가 된다.

하루 종일 삶아대는, 밤까지 식지 않는 열기는, 잘 삶아진 수육을 더 삶아댄다.

이러다간 수분이 아예 빠져 나갈 듯, 아침이 되어서 다시 삶아대기 시작한다. 밖에 나가 일을 한다는 엄두는 내지 못한다. 너무나 잘 자라는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풀들이 한가득 눈에 든다.

그런 와중에 감이 또 하나 떨어진다. 떨어지는 것 감뿐만이 아니다. 좁쌀만 한 검은 알갱이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떨어지다 감잎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갑자기 떨어뜨리는 빗방울인 듯, 구름도 없는데 하루종이 떨어진다.

감나무 한쪽 색을 바꾸었다. 아직 겨울이 아닌데, 황색 잎 무더기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색깔뿐만 아니라 표피, 아니 잎맥만 남은 흔적들이 한 무더기다. 그 아래로는 검은 좁쌀이 떨어져 있다.

한 동안 지겹게 내리는 비에, 제발 그만 내렸으면 좋겠다! 푸념을 하였더니, 이제 아예 내리지 않는다.

내려야 할 비는 내리지 않고 벌레가 먹고 내갈린 똥만 바닥으로 내릴 뿐이다.

비가 내리지 않으니 똥이라도 내리는 것인가? 열기가 더 할수록 벌레는 더 극성스럽게 세력을 넓여 가고 있다. 다 자란 감이 떨어지는 상황에 벌레마저 극성이니 속으로 끓어오르는 열이 밖에서 들이치는 열과 만나 이열치열이다.

너무나 극적인 대립적 상황, 이젠 안으로 들어가 쉬고 싶을 뿐이다. 좋아하지 않는 기계의 바람에 의지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좋아하지 않지만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으니 현장을 떠나 잠시 피신을 택하게 되었다.

아침나절 널어놓은 빨래, 이제 걷을 때가 되니 괜한 심술이다.

빨래집게를 빼내면서 하루 종일 숨겨져 있던 빨랫줄이 드러나고, 손에 쥔 잘 마른 빨래에 코를 박고 햇볕냄새를 맞는 기쁨이 있었는데, 갑자기 떨어지는 비, 땅을 적실만한 양도 아니면서 괜스레 빨래만 젖게 만드는 비가 야속하다. 서둘러 빨래를 걷고 나면, 또 뙤약볕이다. 어쩌란 말인가?

바람은 없어진 듯하다. 멈추었고 이젠 불지 않는다.

이맘때쯤이면 고생했다 두 뺨을 어루만지는 보드라운 바람이 있었는데, 창턱을 넘고, 나뭇잎의 환영을 받으며 감미로운, 그간의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있었다. 바람이 있다면, 마땅히 불어야할 그런 선선한 바람을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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