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동네살이
어르신들의 동네살이
  • 신보미 청주서부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 승인 2024.08.2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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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미 청주서부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신보미 청주서부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는 다양한 삶을 마주합니다. 6·25 전쟁 때 그 유명한 흥남부두에서 피난선을 타고 내려온 할머니의 삶, 평생 사기를 당했던 어떤 할아버지의 삶 등 각계각층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절박하게 묻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한구석 그 물음은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다움이란 무엇일까,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연속적으로 던지게 됩니다.

우리 복지관 어르신들은 대부분 80대입니다. 연세가 높아 멀리는 못 다녀도 경로식당에 걸어다닐 정도의 건강은 챙기는 분들입니다. 복지관을 시작으로 반경 2km의 낮은 언덕이 펼쳐집니다. 빨간 벽돌집들은 사이사이 언덕을 꽉 채웁니다. 어르신들은 거미줄처럼 펼쳐진 골목을 빠짐없이 누비며 동네살이를 합니다.

서부복지관에 다니는 어르신들의 하루일과는 비슷합니다. 오전에 복지관에 와서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할머니들은 소녀처럼 낙엽 굴러가는 소리에도 깔깔대며 웃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 한 분은 오다 주웠다며 정말 오다가 따온 개살구를 한 알을 할머니 손에 쥐여 주기도 합니다. 함께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습니다.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서로 사주겠다며 티격태격하는 낙으로 오는 분도 있습니다. 오후는 동네로 나갑니다. 서너시쯤 시장을 한 바퀴 돌며 동네사람을 만납니다. 이러쿵저러쿵 사건 사고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젓갈 집에서 젓갈을 샀는데 다시마를 서비스로 주더라, 어제 누구네 딸이 집에 왔다더라는 소소한 이야기도 오갑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다사다난하게 펼쳐집니다.

어르신들의 동네살이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조금만 뒤로 물러서서 보면 당사자의 만족도와는 다르게 보입니다. 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이 낡은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누비는 걸음은 가벼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 유모차를 끌고 언덕배기 복지관을 갔다가 시장에 가서 장을 보면 고생하는 것 같습니다. 살고 있는 노후주택은 바람이 많이 들고 2층이라면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깨끗하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경치 좋은 전원주택에 사는 것이 좋은 삶입니다. 혹은 많은 벌이가 있고 고급 음식을 먹는 것이, 프라이팬에 삼겹살을 김치와 구워먹는 것이 좋은 삶일 수 있습니다.

지난해 한 어르신은 자녀가 좋은 집을 마련해준다고 해 복대동에서 용암동까지 이사를 갔습니다. 두 발 자전거 타기가 꿈이라고 말하던 어르신은 집에 놀러 온 복지사를 보자 눈물을 흘리며 반갑다고 합니다. 동네 사람이 그리웠다고 합니다. 길이 멀어 어떻게 오는지도 몰라 놀러오라 말 한 마디 못했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즐겁게 살고 있었는데 자녀가 어르신을 이사시켰습니다. 이사 간 곳은 웃풍도 없고 1층이라 다니기 편했습니다. 살던 집보다 훨씬 쾌적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에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지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계시지 않냐고 해도 20년 동안 보던 벗도 골목도 없다고 합니다. 경로당은 길도 못 찾겠고 텃세가 있다고 하니 가기도 겁이 나서 종일 집에만 있다고 합니다. 어르신에게 용기를 내서 나가보시라 권했지만 아니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좋은 환경으로 이사 왔지만 당사자는 별안간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느낍니다.

오랫동안 살아서 내가 익숙하고 내가 활개치고 다닐만한 곳이 어르신들에게는 우리 동네입니다. 새 건물과 좋은 인프라가 있고 집값이 높은 곳을 우리는 살기 좋은 동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의 삶 속에 그 동네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살기 괜찮은 곳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어르신들에게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여쭤보면 `밥 잘 먹고, 걸어다니고, 친구 있고, 한 번씩 웃고, 그럼 됐지.'라고 말합니다. 정답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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