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담(Jeremy Bentham)은 1748년 런던의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병약하고 감수성이 매우 예민했던 어린 벤담은 꽃을 좋아했고 식물 채집을 즐겼다. 동물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통은 악'이라는 신념이 어린 시절에 이미 형성된 것 같다.
당시 시대 상황은 불평등과 빈곤이 만연했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삶은 비참했으며 건강은 나빠지고 수명은 단축되었다. 이런 문제를 노동자 관점에서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사상이 사회주의였다. 반면에 자유주의 진영에서 주창한 사상이 `공리주의'다.
공리주의는 불평등이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 부조화 때문이라고 보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원칙을 제시한다.
벤담은 인간이 쾌락을 좋아하고 고통을 멀리하는 자연적 경향성을 도덕과 입법의 기본원리로 삼는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도록 태어났기에 쾌락 추구는 자연스럽다는 주장이다.
이런 이유로 `공리성의 원리' 혹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리성'은 이익, 이점, 쾌락, 선, 행복을 생산하는 경향성과 해악, 고통, 악, 불행을 막는 경향성이 대상 안에 속성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행복을 넓은 의미로 사용했다. 양적 공리주의자인 벤담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벤담에게 행복이란 `쾌락의 증가와 고통의 부재' 상태를 의미한다. 공리주의는 한자로 功利主義다. 일반적 의미인 公理主義가 아니다.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유용성 혹은 공리성을 추구하는 사상이다. 공리주의에서 공리성의 원칙은 당사자의 행복을 증진하거나 감소하는 경향을 기준으로 모든 행위를 승인하거나 부인하는 것이다.
벤담은 공동체는 개인들로 구성된 허구적 실체로 본다. 따라서 공동체의 이익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의 이익 총합과 같다.
사회적 행복은 공동체에 속하는 개인이 최대한 행복할 때 실현되는 것이다. 아울러 쾌락엔 질적 차이가 없어 행복은 양적으로 환원되고 계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어떤 행위가 유발한 모든 쾌락의 가치와 모든 고통의 가치를 계산해서 쾌락 값이 크면 선이고 반대면 악으로 판단한 것이다.
벤담의 윤리학은 쾌락은 자체로 선이고 고통은 악으로 보는 결과주의다. 동기를 중시하는 칸트의 윤리와 정면으로 대치된다.
벤담은 행위가 아니라 행위가 초래한 결과를 통해 선악을 판단했다. 하나의 동기에서 선악의 결과가 모두 나오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양적 행복 개념이 이성의 원리에도 맞고 사회 문제 해결에도 기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벤담의 양적 행복은 질적 행복을 담보하지 못해 비판받는다. 쾌락의 양만을 강조해 인간 품위에 기반한 높은 쾌락을 간과한 것이다. 또한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 희생을 강요하는데 악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공리주의 사상은 행복을 독점한 당시 기득권자에게는 매우 개혁적인 사상이었다. 자신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벤담의 꿈은 이 시대 우리의 행복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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