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서문동 골목에 마당 갤러리가 있다. 작은 공간의 갤러리는 단순히 생활 공간으로서의 집이 아니다. 기존 가정집을 개조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작은 공간을 극대화했다. 손바닥만 한 마당에 무대를 설치해 야외 공연장을 만들어 놓았다. 2층 슬래브 건물을 개조해 아래층 구조를 갤러리로 꾸몄다. 위층은 살림집이다.
아래층 갤러리에는 글씨인지 그림인지 모를 해학적인 작품이 전시돼있다. `웃자'라는 글씨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하다. 웃는 얼굴에 마음이 절로 행복해진다. 한글을 동양화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이 동심화(童心畵)란다.
동심화는 40년 넘게 교직 생활을 한 멍석 김문태 선생이 아이들의 순수한 영혼을 한글 속에 표정으로 담아 낸 새로운 예술 장르란다. 안 작가는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 동심화에 매료되어 자청해 멍석의 문하생이 됐단다.
사람이 뛰어가는 모습처럼 그려진 `꿈'의 글자가 마음을 잡는다. 유년에 접어야 했던 화가의 꿈이 절로 살아났다.
초등학교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열여덟에 시집온 어머니는 젊은 새 할머니와 나이 어린 삼촌과 고모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자기 자식 귀한 줄 알면서도 며느리의 본분이 앞서 나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에게 사생대회에 나가기 위해 크레용을 사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단호하게 사생대회에 참가하지 말라며 역정을 내셨다. 어머니는 어린 삼촌에게는 크레용을 사주면서 6대 종손인 나에게는 웅변대회에 나가란다. 어린 나이에 상처받은 나는 삼촌에 대한 질투와 시기에 마음이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하게도 타고난 본성은 아무리 모질게 하려도 변하지 않는가 보다. 나의 꿈과는 다른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한 웅변을 연습하면서 책을 읽게 되고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
심성이 고운 사람만이 얼굴에 그 표정이 나온다 했다. 안 작가의 작품에는 안 작가의 심성이 담겨있다. 힘든 시기를 보내던 어느 날 안 작가는 강가에 앉아 죽음을 생각했단다. 그때 강에 비추어진 달을 보는 순간 “강이 달을 품고 있네. 나도 내 가슴에 희망을 품고 다시 시작해 보자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단다.” 달에 빌었던 소원을 향해 희망으로 살아온 삶이 현실이 됐단다.
절망을 극복한 안 작가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산다. 동심화로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의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며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남을 경계하며 이기적인 마음이 팽배한 시대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안 작가의 마음이 동심화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안 작가는 멍석 스승에게서 마당이라는 호를 받았다. 멍석의 제자가 마당이 되었다. 청출어람이다. 안 작가는 한글에도 생명이 있다며 한글의 자음 모음을 조합해 종이 위에 춤추는 글자로 새롭게 표현했다. 갤러리에는 꿈, 삶, 웃자, 놀자, 인연, 일어나 등 다양한 그림 같은 글씨와 글씨 같은 그림이 전시돼있다.
마당 갤러리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하고 참여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스펀지는 많은 물을 빨아들여도 원형이 변하지 않는다. 안 작가는 스펀지다. 갤러리를 찾는 그 누구에게나 한결같다. 동심화를 통해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마당 안병호 작가의 삶의 철학과 예술혼이 깃든 갤러리에서 어릴 적 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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