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사. 증권가에 떠도는 은어(?)인데 어떤 주식의 주가 앞자리 만원 단위 숫자가 5로 보이면 사라는 뜻이다.
해당 주식은 국내 최고 대장주인 삼성전자다. 국내 거래소 시장 시가 총액의 1/10에 해당하는 시가총액을 보유한 삼성전자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9만원대를 돌파하며 10만 전자를 넘봤으나 이후 2년여 동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2022년 9월 5만2000원대까지 추락했다. 이후 재차 반등을 시도해 지난 8월 8만8000원까지 상승했으나 불과 3개월만인 11월 1일 현재 5만8000원대로 주저앉았다. 불과 3개월만에 30% 이상 하락한 것이다.
이 기간 국민주라고 믿고 삼성전자를 사들인 투자자들은 당연히 큰 손실을 입었다. 삼성전자가 국내 코스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이니 국내 거래소 주식 투자자의 1/10 이상이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는 얘기다.
경제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추락을 AI시대에 대비하지 못한 경영진의 판단 미스로 분석하고 있다. 세계 최대 AI칩 생산 업체인 엔비디아에 납품할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수율을 맞추지 못해 대만의 TSMC와 SK하이닉스에 뒤처지면서 야기된 예견된 결과다.
국내 업체로는 하이닉스가 그나마 삼성전자에 앞선 기술력으로 엔비디아의 납품 시장을 뚫긴 했지만 여전히 국가 경제의 절반을 책임지는 삼성전자가 휘청이고 있으니 국내 주식시장은 물론 경기 전반에 걸쳐 우려감이 높다.
이런 가운데 국내 노동시장의 경직된 규제 분위기가 오늘날 우리나라의 반도체 고급 기술력의 퇴행을 불렀다는 분석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가장 강력한 경쟁사인 TSMC를 보유한 대만의 경우 근로자 월평균 노동시간은 180.3시간으로 우리나라의 156.2시간보다 24시간이 많다.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나라가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국인 대만은 우리나라 처럼 노동 유연성을 저해하는 근로시간 강제 규정이 없다. 우리나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무조건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켜야 하지만 대만은 주 40시간 근로제임에도 불구하고 노사 합의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덕분에 TSMC의 연구개발(R&D)팀 사원들은 초과 근무 연장을 통해 역량을 집중하며 연구에 매진할 수 있다. 회사측은 노사합의로 이같은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R&D팀을 2교대로 돌리며 주 7일, 하루 24시간 연구개발 인력을 활용한다.
일하다 말고 자동으로 컴퓨터가 꺼져서 일감을 집으로 싸갖고 들어가야하는 우리나라의 사정과는 완전히 딴 판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애플의 아이폰 개발팀을 격년 주기로 돌리며 제품을 한창 개발하는 1년6개월은 강도 높게, 시제품을 검증하는 6개월은 여유를 두고 근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연봉 10만7432달러 이상 고소득자는 주 40시간제를 적용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를 운용하고 있어서다.
일본도 주 40시간제를 도입했지만 연소득 1075만엔 이상 고소득 전문직은 근로시간 규제를 받지 않는다. 반도체로 먹고 사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우리나라의 현실. 관료 사회의 경직된 사고가 우리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통열하게 돌아봐야 한다.
저작권자 © 충청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