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살에 시집와 압록강 전투서 남편과 사별
손금이 안 보일정도로 밤·낮 농사일 매달려
청주 북이면 새마을부녀회장으로 궂은일도
전쟁의 아픔·상처 … 보훈가족 돕기위해 헌신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선 `힘'
결혼 4개월 만에 6.25전쟁 터로 간 남편 맹석호씨가 전사하고 나서 유일한 혈육인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살아온 서순득 여사(87·사진).
70년 만에 지난 23일 충청타임즈가 주최한 제46회 충청보훈대상에서 모범상을 받으며 지난했던 삶에 작은 보상을 받았다.
가난을 딛고 홀로 자립하기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는 서 여사의 삶은 전쟁이 낳은 기구한 운명이기도 하다.
“시집을 왔는데 4개월 만에 6·25전쟁이 났어. 남편이 군대에 입대하고 2년 후 압록강 전투에서 싸우다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지. 장남이었던 남편이 죽고 아들 하나 키우며 시부모랑 살았는데, 고생한 거야 말로 다 못하지.”
서 여사는 전쟁을 겪으며 국가도 가난했던 시기라 보상도 막막하고, 시아버지까지 일찍 돌아가시면서 집안의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 10대에 부모가 되고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살았던 서 여사는 그야말로 악착같이 살았다고 했다.
“안 해 본 일이 없어. 그냥 거지 같았으니까. 품도 팔고 산에 가서 나무도 해서 팔고, 장사도 하고…. 손금이 안 보일 정도로 밤이고 낮이고 일했어.”
지난 세월을 되돌리다 서 여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살아야겠기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던 힘든 날들이 눈가에 눈물로 그렁그렁 맺혔다.
힘들었던 만큼 일찍 먼저 간 남편이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오랜 세월이 상처도 담담하게 만드는지 서 여사는 짧은 생으로 마감한 남편이 안쓰럽기만 하다고 했다.
“그 사람이 먼저 가고 싶었겠어. 전쟁이 났으니 간 거지. 원망해서 뭐하겠어…. 사람들은 시부모 모시고 사느라 힘들었겠다고들 하지만 시어머님에게 의지도 하고 큰 힘이 되어주셨어.”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살림을 꾸려온 서 여사는 푼푼이 모은 돈으로 논과 밭을 마련했다. 남들에게는 1만여 평의 땅이 적어 보일 수 있지만 정직하게 땀 흘려 일군 평생의 재산이다.
남자도 하기 어려운 일꾼 몇 몫을 해낸 서 여사는 이웃을 위한 일에도 발벗고 나섰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청주 북이면 새마을 부녀회장을 맡아 농촌 부엌개량 사업, 절미운동, 지붕개량사업에도 앞장섰다.
또 전쟁의 상처와 아픔을 지닌 보훈 가족을 돕는 일에도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이처럼 전쟁미망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서 여사지만 평생의 한으로 남은 일이 있다. 바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공부다.
“공직생활을 마치고 이제 퇴직했지. 먹고사느라 공부를 시킬 수도 없어서 고등학교도 간신히 졸업시켰는데 그래도 아들을 대학 보내지 못한 것이 한이여.”
하얀 모시 한복을 입고 시상식장을 떠나가는 서 여사의 뒷모습은 아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곧고 고왔다.
연세가 높아 농사일을 접고 아들네와 합쳤다면서도 여전히 당신보다 아들이 먼저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국이 세계 경제선진국으로 우뚝 선 힘은 서순득 여사처럼 강한 정신력임을 역사를 통해 엿보게 된다.
/연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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