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 없다고 하면?
만약 내가 없다고 하면?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8.1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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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나는 누구인가? 철학자들이 자주 묻는 말이다. `나'로 이해되는 것들을 나열해보자. 판단하는 자, 인식하는 자, 감각하는 자, 기뻐하는 자, 늙는 자, 태어나는 자, 죽는 자, 다시 태어나는 자, 불안해하는 자 등등. 앞에서 자(者)로 표현되는 것이`나'이다.

어떤 행동을 하거나 느끼고, 알고, 판단하는 자(agent)를 보통`나'라고 한다. 세상에서 겪고, 느끼고, 만들어내고, 일어나는 모든 것들의 중심이 `나'이다. 겁을 먹었다. 화가 났다. 멋진 이성을 보고 마음이 동하였다. 웅장한 경치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 슬픈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이런 모든 일을 하거나 작용이 일어날 때 상정하는 작용자(agent)가 `나'이다. `나'는 누구(뭐)지? 라는 질문은 이런 작용자를 상정해야 가능해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복합질문이다. 곧 두 개의 질문이 섞여 있다. 이 질문은`내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그럼 나는 누구지?'로 풀이된다. 곧 내가 존재한다는 걸 전제하고 있다.`내가 존재한다'는 답이 나오려면 `내가 존재하나?'를 먼저 물어야 한다. 따라서 이 질문은 `나는 존재할까?'라는 질문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함께 들어가 있다고 봐야 한다.

앞에서 풀이한 맥락에서 풀어보자면`세상에서 겪고, 느끼고, 일어나는 작용의 주체(者)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성립하기 위해서는`그런 것이 있기는 있는 건가?'라는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이 질문에 대해 있다고 답해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가능해진다. 내가 없을 가능성이 없어야 성립되는 질문이라는 말이다. 가능한 두 길이 있을 때 한 길을 선택하려면 나머지 한 길의 불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나의 불가능성을 입증하지 않았다. 불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건 가능하다는 말이다. 곧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에 대해 그 작용을 하는 자(agent)를 상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내가 없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럴 경우,`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불필요해진다.

정리해보자. (내 안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작용이 있다. 그 작용에는 작용자로서의 내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99%의 사람들은 내(작용자, agent)가 있다고 생각하고 산다. 모든 행동과 작용에는 그걸 수행하는 주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런 행위주체가 없을 가능성도 있다.

그럼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은 반쪽 자리가 된다. (행위주체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데 없을 가능성을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없다는 길을 선택하면 어떻게 될까? 즐거울 때는 즐거운 작용만이, 슬플 때는 슬픔의 작용만이, 화가 날 때는 분노 작용만이, 불안할 때는 불안 작용만이, 배가 고플 때는 배고픈 작용만이, 이성에 감정이 동할 때는 욕구 작용만이 있게 된다. 그 모든 걸 통합하는 자로서의 나의 존재? 그런 것이 없다고 해도 마음은 여전히 작동한다. 언제나 지금 여기 일어났다 사라지는 생각이나, 느낌, 의욕, 봄, 들음과 같은 작용들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없다면 느낌과 작용들을 불필요하게 연결시키거나 통합시키지 않게 된다. 배가 고프면 배고픔에만 집중하게 되고 그래서 그때에는 밥만 먹는다. 배고파서 밥을 먹는다고 할 수도 없다. 그건 밥을 왜 먹느냐고 물어본 것이기 때문이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밥 먹을 때는 밥만 먹는다. 졸리면 자지만 잠잘 때는 잠만 잔다. 성욕이 일어나면 섹스를 하지만 섹스를 할 때는 섹스만 한다. 걸을 때는 걷기만 한다.

어떤 행위나 생각을 하든 그저 할 뿐 아무것도 곁들이거나 덧붙이지 않는다. 그게 안 된다고? 그럼 불필요한 `나'를 이미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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