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은 순국선열의 날이다. 이날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하시고 희생하신 순국선열의 독립 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순국선열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로,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에 반대하거나 독립을 위해 항거하다 순국한 분들을 말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중근의사,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등이 순국선열이다.
열사, 의사, 지사, 어떤 차이일까?
열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맨몸'으로 저항하다 의롭게 돌아가신 분을 말한다. 그리고 의사는 목숨을 걸고 `무력'으로 항거하다 의롭게 돌아가신 분을 말한다. 그리고 지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제 몸바쳐 일하려는 뜻을 품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의사와 열사를 모두 포함할 수 있다.
순국선열의 날이 11월 17일인 이유는 1905년 11월 17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이 치욕스런 날을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독립투사들을 추모하는 날로 기념해 을사늑약 체결의 역사적인 치욕을 잊지 말자는 취지다.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임시회의 총회 때 임정 요인이었던 지청천, 차이석 등이 매년 11월 17일을 독립투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충성심을 기리는 날로 독립투사들을 추모하는 날로 정하면서 시작이 되어 지속적으로 기념식을 거행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민간단체 주관으로 열리게 되었다가 1962년부터 1969년까지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렸다. 1970년부터 다시 민간단체 주최로 열리게 됐으며 1997년 독립유공자들의 요청에 따라 국가기념일로 재지정하고 국가보훈처에서 주최하고 있다.
전국의 여러 곳에 순국선열 묘역이 있지만 제천의 순국선열 묘역은 고암동 산 28-9번지 일명 고래미 장골에 위치한다. 제천시내에서 영월 방면으로 국도 38호선을 타고 가다 보면 태백선 장락역 건널목을 지나 동쪽으로 800m 거리에 자리한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전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제천 의병의 뜻을 기리고, 애국 충절의 숭고한 기상을 후손들에게 심어 주기 위하여 1984년 12월에 조성하였다. 제천 남산 가마골에 있었던 의병 7의사(김용주·김재관·추성손·우재봉·우규하·박원용·오문용)들의 묘소와 의병장 김상태와 최욱영의 묘소를 순국선열 묘역으로 이장하였다. 2007년 4월 순국선열 묘역의 성역화로 제천시 흑석동 산47-1번지에 있는 이정규의 묘소와 모산동에서 열사 홍사구의 묘소를 이장하여 모두 11위를 안장하여 지금의 `제천순국선열 묘역'으로 조성했다.
경내 부지는 330.58㎡이고, 주차장 및 수목원 495.87㎡를 성역화하면서 재실을 갖추었다. 순국선열 11위 묘역은 서북서향으로 안치되어 있다. 그런데 유해가 모두 일제에 의해 훼손되어 구분할 수 없는 7의사는 1기의 묘소에 안장함으로써 모두 5기의 묘소로 구성되어 있다. 각 묘소는 둘레석을 두른 봉분에 잔디를 입혔으며 묘소의 좌측에는 갓석의 비석을 세웠다. 둘레석과 상석, 그리고 향로석, 혼유석 등 석물을 갖추고 있다.
2011년 현재 순국선열 묘역은 제천시청과 제천동우회가 함께 관리하고 있는데 7의사 위령제를 음력 9월 9일에 지냈으나 2003년부터 매년 제천 의병제 행사 때 제천동우회 주관으로 제물을 진설해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
올해 제천의병제에는 제천지역의 학생들이 함께 참여해 더욱 뜻 깊은 행사가 되었다. 방학 기간에 부모와 함께 이곳을 찾아 나라 사랑 정신을 되새기면 더 좋을 것 같다.
충북 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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