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단식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 소장
  • 승인 2024.02.25 16: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복을 여는 창

가톨릭 전례력에서 올해 2월 14일은 `재의 수요일'이고 이번 주부터는 `사순시기'가 시작된다.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성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 40일간을 말한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부활 축제를 준비하는 시기다.

`사순(四旬)'은 `사십 일'이라는 뜻으로 종교적으로 중대한 일을 앞두고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한다.

가톨릭교회는 사순시기 동안 `단식, 금육, 나눔'의 실천을 권한다. 단식과 금육은 희생과 극기의 상징이며, 이 희생은 일상에서 구체적인 사랑의 나눔으로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식'에 대하여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외친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내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은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덮어 주고, 네 혈육을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서 6-7)”

건강을 위해 체중을 줄이려고 `단식'하는 현대인에게 보내는 일갈처럼 들린다.

자신을 위한 지나친 영양분 섭취로 생기는 성인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실시하는 현대인의 단식과는 의미 자체가 다르다.

남을 위해 자신을 나누는 사랑만이 진실한 단식이라고 이사야 예언자는 외치고 있다.

단식은 비단 음식을 줄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음식을 넘어 `생각의 단식, 말의 단식, 감정의 단식'이 더 필요하다.

현대인은 너무 많이 생각한다. 인간이 진화의 여정에서 발달시킨 뇌의 정교한 조절 능력 때문이다.

쉴 새 없이 초 단위로 생각이 떠오르고 바뀐다. 생각을 줄이지 않으면 뇌가 과부하 된다. 부정적 생각이 많아지면 스트레스가 극심해진다. 생각을 멈추어야 한다.

생각의 단식이 필요하다. `묵상_멈춤'이 필요하다. 삶을 멈추고 밤하늘의 장구한 별을 보며 숲의 품에 안기자. 촛불을 켜고 침묵의 단식으로 더 위대한 존재에 집중해보자.

`말의 단식'도 필요하다.

현대 사회는 말이 넘쳐난다. 언론과 정치인이 내뱉는 거짓과 증오의 말은 영혼을 질식시킨다. 부정의 말, 혐오의 말, 미움의 말, 질투의 말, 욕망의 말이 전파를 타고 우리를 옭아맨다.

말을 줄여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의 30%만 줄여도 사회적 갈등은 50% 이상 줄어든다. `침묵'으로 말을 단식해야 한다.

`감정의 단식'도 중요하다. 현대인은 감정의 홍수에 파묻혀 산다. 감정의 강도가 점점 강해진다.

웬만큼 강한 자극이 아니면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강한 감정의 추구는 `중독'을 유발한다. 알코올 중독, 섹스 중독, 약물 중독이 행복을 갈아 먹는다. 감정의 단식에는 `감사'가 최고다.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감사는 강한 자극을 주지만 중독을 유발하지 않는다. 감사가 만드는 성숙한 감정은 우리를 평화로 이끌어 준다.

은총의 사순시기에 `단식'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실천하여 더 행복해지기를 기도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