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
심령이 가난한 자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4.03.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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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하느님을 믿는 기독교, 천주교의 궁극적 목표는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인가? 기독교 천주교의 신앙생활이 단지 죽은 뒤에 가야 할 천국행 티켓을 예매하기 위한 과정인가? 기독교 천주교 신앙의 핵심은, 매 순간 제 안의 온갖 주견과 독선을 부인하고 비워내며,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는 것이어야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남은 자신의 업식을 녹이고 `나 없음'의 무아(無我)를 깨닫는 것이고, 자신도 예수님과 다르지 않은 신의 독생자임을 단순히 믿는 차원을 넘어서, 온몸의 세포 하나로 체득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아를 깨닫고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남으로써 자신이 신의 독생자임을 깨달으면, 매 순간 팔이 안으로 굽는 일 없는 지공무사한 마음으로 그 무엇에도 걸림 없는 대 자유의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됨은 명약관화하다.

매 순간 성령의 도구로 쓰이며, 자신만의 만족이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닌, 하늘의 뜻을 실천-실행하는 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된 삶이며, 갓난아기 같은 순수한 삶이다. 제 이득을 위한 온갖 지식과 논리로 네 편 내 편 나눌 것 없이, 원수조차 사랑하는 큰 사랑을 베푸는 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의 갓난아기 같은 복된 삶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적-지역적인 제한 속에서 성립된 과거의 유대교,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전통적 입장에 세뇌-동조하는 내 뜻이 아니라, 지공무사한 하늘 뜻을 따르는 성령의 도구가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빛의 역할은 예수님이 열두 제자와 최후의 만찬을 나눈 뒤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것처럼 따듯한 마음으로 주변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등 큰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났다면, 세상을 위한 빛의 역할과 함께 소금의 역할도 해야 한다. 소금의 역할은 세상이 부패하지 않도록 따끔하게 소금을 뿌리는 일이다. 불교적 표현을 빌리면, 빛의 역할이 올바름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따듯한 사랑으로 이웃을 포용하는 활인검이고, 소금의 역할은 그릇됨을 밝히며 냉철한 이성으로 이웃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살인도가 된다. 성전 안에서 돈을 바꿔주는 이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이들의 의자를 뒤엎고, 기도하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을 만든다며 그들을 성전 밖으로 내쫓은 예수님의 행위가 바로 소금의 역할이다. 좋은 게 좋다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며 자신의 이득을 위한 교활한 처세술을 다 버리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따갑고 아픈 채찍도 휘두르며, 손에 똥 묻는 것도 상관 않고 기꺼이 똥을 치우는 것이 소금 역할이다.

사람의 입장만 고집하며 수표가 귀하다는 분별과 독선에 사로잡혀, 수표를 외면한 채 똥을 먹는 개를 무조건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무늬뿐인 소금의 역할이다. 지금 나는 나만을 위한 정의 없는 폭력을 쓰고 있는가? 상대를 위한 사랑의 매를 치고 있는가? 제 이득을 위한 달콤한 아부성 발언을 하고 있는가? 하늘 뜻을 실천하는 따끔한 쓴소리와 함께 상대를 배려하는 따듯한 말을 전하고 있는가? 자신만의 만족과 이득을 위한 무늬뿐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변을 위한 선행조차도 죽은 후 천국 가기 위한 욕심에서 행하는 엉터리 종교인들이 즉시 대오각성, 오랜 미몽과 아집의 우물에서 벗어나기를!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나 없음'의 무아(無我)를 깨닫고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하는 진정한 종교인들로 넘쳐나는 지구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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