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BC 384년에 그리스의 스타케일라에서 태어났고 행복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많이 가장 자주 등장하는 철학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행복론의 핵심은 `목적론적 사고'입니다. 그는 대표적 저서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의 모든 행위와 선택은 좋음(Agathon·선<善>)이라는 목적을 추구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고등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대학을 진학하려는 이유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한 목적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모든 행동은 좋음을 추구하는 목적 지향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목적에 위계(位階)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인간 행동의 목적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좀 더 높은 단계의 목적을 향한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삶에는 반드시 하나의 궁극적 목적이 존재해야 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공허하고 무의미해집니다. 우리가 오르는 마지막 궁극적 목적, 최고의 선, 최고의 좋음은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잘못된 행복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그가 비판한 잘못된 행복은 `쾌락, 명예, 부'입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삶은 짐승들의 방식이고 노예 같은 삶이라고 합니다. 인간 행복의 목적이 단지 쾌락의 충족이라면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명예' 또한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과 분리되지 않아야 하는데 명예는 다른 사람이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명예는 남이 인정해 주어야만 생깁니다. 명예는 탁월성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에 관해서도 비판했는데 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참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조건을 `완전성과 자족성'으로 보았습니다. 완전하다는 것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선택될 때 충족되는 것을 말합니다.
행복은 완전성을 지녀야 합니다. 행복은 궁극적이므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선택되어야만 합니다. 아울러 자족성은 더 이상 다른 좋음이 추가될 필요가 없는 상태입니다. 행복은 완전한 좋음이어야 하므로 또 다른 좋음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탁월성'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으로 정의합니다. 탁월성은 인간의 고유 기능인 이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 탁월하게 발휘되는 품성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성적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하는 활동을 평생 실천하고, 인간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 때 행복해집니다. 이성을 통한 탁월성을 발휘하려면 강한 의지가 필요하지만, 인간은 나약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약한 의지를 보완하기 위해 중용의 습관을 강조합니다.
행복은 이성에 따르는 탁월하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한 반복과 습관이 만든 예술작품입니다. 좋은 습관의 언덕을 넘어야만 행복의 문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의미 있고 좋은 삶의 습관을 만들라는 것이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행복의 조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