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방의회가 입후보자를 정하지 않고 무기명 비밀투표로 대표자를 뽑는 방식을 흔히 `교황선출방식'이라고 불러왔다. 이런 절차가 민주적이지 않으니 `후보 등록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고 상당수 지역에서 이를 도입하고 있다.
우선 바로잡을 내용부터 바로잡자. 교황선출방식, 즉 `콘클라베(conclave)'는 입후보자를 정하지 않는 무기명 비밀투표는 맞으나 그 방식과 정신이 대한민국 다수의 지방의회가 선택한 의장선출방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다수의 대한민국 지방의회는 다수당의 다선 의원이 의장을 맡는다는 대전제 아래 다수당만의 숙의 과정 또는 비공식, 비공개 투표 과정을 거쳐 `내정한' 사람을 입후보 절차 없이 무기명 비밀투표로 뽑는다. 2020년, 서울시의회는 이렇게 내정한 의장단의 이름을 기표소 안에 붙여놓고 투표를 진행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반해 교황은 추기경들이 폐쇄된 장소에 모여서 뽑는다. 콘클라베가 `열쇠로 잠근다'라는 뜻이란다. 종이와 펜만 들고 들어가 빵과 물, 포도주만 먹으며 3분의 2를 득표하는 교황이 뽑힐 때까지 매일 두 차례 투표한다. 1268년에는 무려 3년 가까이 이 절차를 진행했다. 지금은 사흘 안에 결정되지 않으면 1위와 2위 득표자를 놓고 결선투표로 뽑는다.
이렇게 방식과 그 정신이 확연히 다르니 일단 `교황선출방식'이라는 표현은 잘못됐고, 과분하다. 입후보자가 없다는 점만 같을 뿐, 우리 지방의회는 이미 내정했으므로 입후보 절차가 필요 없고, 내정되지 않은 자는 `나를 찍어달라'는 의사를 내비칠 수도 없다는 얘기다.
의회의 구성에서 소수당은 마지막 기표 절차 외에는 의장 선출의 어떤 과정에도 참여할 수 없는 짬짜미라는 점에서 초등학교 반장선거 만도 못하다는 지적은 백 번 타당하다.
이처럼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요인 때문에, 상당수 지방의회가 후보 등록제를 도입하려는 경향인 것은 분명하다. 시?도의회(광역) 17곳 중에서 11곳, 시?군?구의회(기초) 226곳 중에서 103곳이 이미 도입했으니, 이미 절반 가까이가 바꾼 셈이다. 하지만 충북에서는 옥천군의회만 규칙을 바꿨을 뿐이다.
지난 4월, 청주시의회에서 규칙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관련 안건이 본회의에 오르지도 못하고 폐기됐다. 이를 끊임없이 주장해온 김태순(국민의힘, 초선) 의원이 누구나 의장 후보로 등록할 수 있고 정견 발표를 통해 자질을 검증받을 수 있도록 `회의 규칙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4월 26일, 운영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이 규칙 개정안은 청주시의회 의원 40명(4?10 재?보궐선거 전 재적의원, 현재는 42명) 중 18명(애초 19명, 1명은 포기)이 발의에 참여했지만, 운영위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운영위를 통과하지 못해도 의원 3분의 1의 서명으로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이뤄지지 않았다.
출범 당시 `21대 21 동수'로 `전반기 국민의힘, 후반기 민주당 의장'을 내약(內約)했으나, 현재는 수적 열세(국민의힘 22, 민주 19, 무소속 1명)로, 의장 자리를 보장받기 어렵게 된 민주당조차도 규칙 개정에 힘을 싣지 않았다는 얘기다. 소속 정당을 떠나서 다선이라는 기득권의 눈에는 초선의 `반기(反旗)'가 마뜩잖았던 듯하다.
후보 등록제를 도입한 곳도 대부분 선거 이틀 전까지 등록을 받고 당일 정견을 발표하는 정도다. 지방의회를 다시 시작한 지 33년이 지났는데도 이 수준이다. 사실 국회도 별수가 없다. 어디를 먼저 바꿀 것이지 고려해야 하는데 바꿀 수 있는 지역부터 바꿔서 선례(先例이자 善例)를 전파하는 것이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