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아의 행운타령
행운아의 행운타령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4.06.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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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내세울 거 하나 없는 범부지만 행운아입니다.

사고도 많고 질환도 많은 변화무쌍한 세상인데도 70년 넘게 성하게 살고 있고, 결혼한 지 4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아내와 알콩달콩 살고 있으니 누가 뭐래도 행운아입니다.

또 두 아들이 장성해 어엿하게 일가를 이루고 살고 있고, 은퇴 전보다 은퇴 후가 더 여유롭고 행복하니 더할 나위없는 행운아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도, 성정이 착한 부모님한테 태어난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그 덕에 자유와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고, 인연 맺은 선남선녀들과 어우렁더우렁하며 지냅니다.

대학진학을 못하고 타관객지인 충북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것도, 사사건건 발목잡고 힘들게 했던 동료직원이 있었던 것도, 키 작고 특기도 없는 신체적 약점도, 심지어 운동하다 무릎연골이 찢어짐도 지나고 보니 이 또한 행운이었습니다.

공직이 천직이 되었고, 삶의 보루가 되었고,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보람과 긍지도 적잖이 쌓았으니 축복이나 진배없습니다.

공직수행 덕분에 공직자 아내를 만났고, 학위를 취득해 대학 강단에도 설 수 있었고, 삶의 내공도 단단해졌으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신체적 약점이 방탕과 오만을 감퇴시킨 약이 되었고, 찢어진 무릎연골이 맨발걷기와 접지를 통해 좋아지고 마음까지 쾌청해졌으니 천만다행입니다.

그밖에도 크고 작은 행운이 알게 모르게 찾아와 오늘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가르침과 버팀목이 되어준 은사님과 친구와 선·후배들이 그러하고, 문학을 한 것도, 좋은 책을 만난 것도,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게 된 것도, 성당에 다니게 된 것도, 탁구와 골프를 친 것도, 가슴에 아로새겨진 희비의 쌍곡선들도 다 행운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그런 고마운 사람이 되고자 했고, 몇 권의 책을 내고, 독자들과 카톡으로 소통하고, 하느님께 귀의해 죄 사함을 받고, 즐탁하고 즐골하며 유쾌하게 살고, 구름처럼 머물렀다 사라지는 애틋한 인연들을 추억하며 사니 복인입니다.

각설하고 행운하면 떠오르는 언어들이 있습니다.

횡재, 로또, 대박, 운수대통, 러키세븐, 운칠기삼(運七技三), 새옹지마(塞翁之馬), 벼락출세, 어부지리, 호박이 넝쿨째 굴러 떨어졌다, 실력 좋은 이가 운 좋은 이를 당할 수 없다가 그것입니다.

또 재수 옴 붙었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재수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 달도 차면 기운다도 있습니다.

재수 좋은 날과 재수 나쁜 날 그리고 재수 있는 놈과 재수 없는 놈도 있습니다.

이런 말들이 인류에 회자되는 건 사람들이 행운과 재수를 갈망한다는 증좌입니다.

묘한 게 행운입니다. 새옹지마처럼 흉화가 길복이 되는 경우도 있고, 수십 수백억 원을 횡재한 로또 당첨자들의 비참한 말로처럼 행운이 액운이 되고 불운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숫자 7을 행운의 숫자라고 선호하고, 횡재와 대박과 운수대통을 고대하고 희원하며 삽니다.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의 꿈이자 기댈 언덕이 행운이니 나무랄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세 잎 클로버 속에 네 잎 클로버가 깃들어 있듯이 행운이 어딘가에 깃들어 있고, 그래서 살만한 세상이고 재미있는 인생사입니다.

살아보니 행운과 불운은 동전 양면과 같이 늘 붙어 다녔습니다. 아니 행운과 불운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었습니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어떤 이는 행운이라 기뻐하고 어떤 이는 불운이라 낙심하니 말입니다.

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귀히 여기면 행운이 따르고 하찮게 여기면 불운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거듭나게 한 시련과 아픔이 참된 행운입니다. 낙심과 실패와 좌절을 딛고 피는 꽃이 진정한 행운입니다. 그대가 그랬던 것처럼.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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